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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중공사(大衆公事)란?
이름  운영진 날짜 2002-03-09 [23:54] 조회 26883
 
대중공사는 불교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대중(大衆) 회의의 방법으로 승단의 모든 대중들이 모여서 대중의 평등한 참여권과 자유로운 발언권을 바탕으로, 민주적인 협의를 통하여 의견을 수렴 결정하는 공동체 회의입니다.

예전 우리 승가에는 오로지 대중공사를 통하여 공동의 의견을 수렴하여 절을 운영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이 일제에 의해 본사와 주지승 제도가 시행되면서 절에 법 답지 않은 모습들이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천불동이 상업사이트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인 살림을 꾸려감에 있어서도 이런 의견수렴의 전통이 절실히 필요하므로 새 게시판을 설치하게되었습니다.

아래 인터뷰 기사는 노스님의 옛 대중공사의 모습에 대한 생생한 증언입니다.
잘 읽어 보시고 천불동의 발전을 위한 지혜를 부탁드립니다.


        합장.

-------------------------------------------
<법보신문>
번호 : 434/15009                입력일 : 99/01/27 14:28:42      자료량 :151줄
제목 : [498호]주제로 만나는 큰스님-도원 스님

  "대중공사는 자연스런 승려교육의 장"

  낙엽을 모두 떨군  겨울 산은 황량하다는 느낌보다는  신비로움이 가득하
다. 여기에 눈이라도 내려 눈꽃이 온산을 뒤덮으면 금상첨화지만 그렇지  않
더라도 겨울 산은 항상 신비함을 내뿜고 있다. 겉보기에는 황량함이  가득한
것 처럼 보이는  겨울 산에 신비로움을 더해 주는  것이 바로 산사(山寺)다.
일제가 대동아전쟁을 일으킨 직후 파계사로  출가한 뒤 60년대 중반부터 70
년대 초반까지 잠시 종단 일을 맡은 것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파계사에서
수행해 온 스님에게 '산중공의'라는 주제를 들고 1월 17일 오후 대구 팔공산
파계사 대비암을 찾았다. 겨울날씨 답지 않게 따스한 햇살이 가득했던  대비
암의 오후, 도원 스님과의  대담은 겨울 산에서 산사가 왜 신비로움을  더해
주는지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스님께서 처음 출가할  당시 사찰에서 대중들의 의견을  묻는 대중공사는
어떠 했습니까.
  ▲대동아전쟁(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직후  파계사로 출가를 했다. 당시
파계사에는 산내 암자까지 아무리  적어도 100~150명의 스님들이 살고 있었
다. 요즘과 같이 사찰의  대표로서의 주지나 총무원제도, 본산제도는 한국불
교 전통의 것이 아니라 모두 일제 사찰령의 잔재다. 일제이전까지만  하더라
도 주지라는 이름은 없고 단지 그 역할을 담당했던 승통(僧統)이 있었다. 승
통은 지금의 주지처럼 인사권이나 재정집행권  등을 가지고 전횡을 했던 권
력의 상징이 아니라  대중의 심부름꾼이었다. 일제의 사찰령이 발동이  되고
나서도 사찰에서는 지금처럼 서로 할려고  나서지 않고 어른 스님들이 부탁
을 하면 그때서 겨우 맡고는 했다.
  예를 들어 파계사 요사채가 한곳 다 무너지게 생겨서 중창불사를 해야 된
다면 먼저 대중들이 모여 불사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를 의논했지.  불사의
규모가 작은 경우에는  사중(寺中)의 스님들이 주머니를 털어서 자체적으로
처리했지만 규모가 클 경우에는 '걸립패'라고해서 스님들로 조직된 시주단이
꽹과리와 북 등을 가지고 인근 마을을 돌아다니며 쌀이며 돈이며 액수의 많
고 적음에 관계 없이 시주를 받아 불사를 했다.

  대중공사의 모습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십시오.
  ▲먼저 어간에 어른 스님들이  자리를 잡고, 그 다음 50대 스님들이  중간
에 앉고, 상판에는 30~40대스님들이, 불단  바로 밑에는 20대 스님들이 차례
로 앉아 대중공사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대중공사를 대웅전 등 법당에서  한
것이 아니라 스님들이  공양도하는 대중방에 모두 모여서 대중공사를  했지.
만약에 사중에서 잘못을 저지른 스님이 있을 경우 그 잘못이 크면은 명고출
송(鳴鼓出送)이라고 해서 잘못을 범한 스님의  승복을 벗겨 속복(俗服)을 입
히고 등에는 북을 매달아  절밖으로 내쫓았다. 이렇게 되면 인근 마을은  물
론 멀리  다른 사찰에서도 아무개 스님이  명고출송 당했다는 소문이  퍼져,
이 스님은 더 이상 승가에 머물거나 할 수 없었다. 대중공사에서 결정된  사
항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대중공사에서 결정된 사항은 승통이  진두지휘하여
이행했고, 그 결과를 대중공사를  통해 보고하도록되어 있었지. 불사를 했는
데 돈이 얼마들었고, 또  돈이 부족했는지 남았는 지에 대해서 정확히  보고
했다. 말그대로 지금의 주지 역할을  했던 승통은 도량에 머물며 삼보(三寶)
를 호지(護持)하는 스님이었지.

  최근 발생했던 조계종 사태와 관련, 일부에서는 스님들이 혹은 절이  돈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스님께서 출가하셨을때 대중 생활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요.
  ▲사중에서 소임을 맡지 않는 사람은 공양을 먹지 못했다. 오로지  소임을
맡은 사람만이  공양을 먹었지. 아침  10시쯤이되면 '쌀북'이라고 해서  북을
치면 사미들이 '쌀바구니'를 들고 대중들의 처소로 돌아다니면 그날 먹을 양
식을 각 처소에서  내놓았다. 이를 모아서 대중공양을  했다. 만약에 직책을
맡지 못한  스님들의 경우에는 자기 스스로  먹을 양식을 마련했어야  했다.
단 채공과 부목, 공양주는 이때 쌀을 내지 않아도 됐지. 만약 그날 외부에서
객승이나 손님이 왔을 경우에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고해서 자기 밥그릇
의 밥을  조금씩 덜어 손님들의 공양을  해결했는데 이때도 법칙이  있었다.
먼저 어른 스님들 부터 공양을 드리고, 혹 밥이 모자랄 경우에는 나이  어린
스님들의 밥부터 덜어내고는 했다. 이러니 젊은 스님들의 경우에는 한끼  먹
는게 주먹만큼이나 될까 할  정도였다. 단지 섣달과 정초사이 한 보름  간은
만발공양이라고 해서 이때는  대중들이 자기 먹을 쌀을 내지 않았다.  5·60
년대 정화 이전만 하더라도 절에는 여자들 구경을 못했다. 채공부터  공양주
까지 모두가 남자들이었다. 처음 출가를 하면 채공, 부목, 공양주  등을 거쳐
5년에서 10년 정도 지나면 그 절의 살림살이를 훤하게 알게돼,  지금처럼 행
자교육이니 뭐니 안해도 중물이  잘 들었었는데 … , 사미들의 경우에는  어
른 스님들을 위해 봄이면 산을 돌아다니며 나물을 뜯어 어른 스님을 공양했
다. 대중공양에서 이때 마련한  나물 등을 사미들이 잘 조리해서 별도로  어
른 스님들을 시봉했다.
  그때는 스님들이 하다못해 마당쓰는 일까지  소임을 모두 맡고 있었기 때
문에 한가하게 여유를 부릴 만한 시간이 없었다. 새벽 3시에 예불을 시작하
면, 지금처럼 금방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불은 물론 장엄염불, 참선까지 하
고 나면 한 두시간이  걸린다. 또 스님들은 예불을 마치고 나서도  대중방에
앉아 주력이나 염불, 간경을 하며 1시간 가량 공부를 했다. 이렇게 3시간 가
량 예불을 마치고 나면  그때 아침공양을 했지. 만약에 대중스님들 중에  누
가 조금이라고 게으름을 피우면 그날 대중공사때는 난리가 났다. 어른  스님
이 "아무개 스님은 오늘  운력도 나오지 않고 무슨일이 있느냐"고 추궁하면
정말 몸둘 바를 모르고 참회를 했다.

  앞서 스님께서 지적하신  바도 있지만 이번 사태와  관련 승가교육제도에
대한 문제점도 얘기됐는데 당시에는 어떠했습니까.
  ▲그때는 제자가 강원으로 공부하러 간다면 어른 스님들이 노구를 이끌고
직접 탁발을 해서 상좌들의  학비를 마련해 줬다. 당시만 해도 스승이  상좌
의 학비를 대는 것은  당연했고, 노스님이 직접 탁발을 해서 학비를  마련해
주니 상좌는 스승에 대한 고마움이 당연히 생기게 됐다. 또 절 분위기  자체
가 하나의 교육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으니 공부하지 말라고 해도 자연스럽
게 중물이 들고 공부가  됐던 거지. 또 강원을 졸업한 스님들은  의무적으로
3년간 절에 와서 서기 등과 같은 소임을 맡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다. 그
런데 일본이 들어오고 나서는 스님들이  대처로 나가 공부를 하더니만 장가
도 가고 선생도 되고  … 결국 절에는 인재가 없게 됐다. 이것은 일본이  한
국불교를 가만히 두면 안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거다. 임진왜란때  스님들이
들고 일어나 왜적과 맞서 항쟁한 사실을 일본은 잘 알고 있었지. 그러니  한
국불교를 온전히  놔두면 어떻게 되겠어,  그러니 일본인들이  31본산제도도
만들고, 사찰령도 만들고,  주지제도도 만들고, 특히 스님들을 장가보내고했
던거지. 물론 일본이 와서 승려의 도성출입해제나 포교와 같은 긍정적인  면
도 있었지만 결국 오늘날 한국불교의  병폐는 일제의 잔재의 연속이라는 거
지. 그래서 정화를 했던 거고.

  일제시대때 주지제도가 생겨났으면 당시에도 주지 선출을 했을텐데,  그때
는 어떻게 했는지요
  ▲지금의 선거제도는 승가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승납 몇년  이
상만되면 모두 투표권이 있으니 후보로  나온 스님들이 나이 어린 스님들에
게 굽신거리며 한 표 부탁한다고 돌아다니고. 이것은 승가의 위계질서를  무
너뜨리는 거고, 그런 선거제도는 속세의 법이지 승단의 법은 아니야. 이렇게
되니 어른들에 대한  공경심도 사라지고. 과거에는 대중공사에서 이번에  누
가 주지를 맡아  달라고 하면 하고 싶어도  서로 안한다고 했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비삼망(備三網)이라고해서  말사 주지스님들이 모여 주지 후보
를 세명정도 추천하면 어른 스님들이 보고서 그 중 한 명을 결정했지.  물론
선별 기준도 인맥이나 세속적인 판단기준이 아니라 학식과 덕망, 수행  역량
등을 고루 갖춘 스님들을 선택했다.
  이제는 사찰이 직장화가 되었다는 느낌이야. 주지는 대중공사의  집행관으
로 삼보호지를 여법히 한다는 관념을  가져 삼보정재를 잘 보전관리해야 한
다는 의무감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주지직 자체가 권력의 상징으로 변질
되고 말았다. 이것은 모두가 승려의 본분의식을 망각했기때문이야. 주지직이
나 소임은 서로 안할려고 해야 하는데  이제는 서로 할려고 드니 싸움이 나
고 문제가 생기는 거야.

  그러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재정관리가 공명정대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근
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출가본연의 정신, 즉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
提下化衆生)'이라는 출가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주지 권한을
축소해 이제는 서로 주지를 안하려고 하는 사태가 생겨야 한다.
  오래전 프랑스의 가톨릭  신부들이 한국의 전통사찰을 모두  둘러본 일이
있는데 그때 그들이 내린 결론은  한국불교는 이대로 가면 망한다는 것이었
다는 얘기를  들었지. 대다수의 사찰이 사찰  건물을 유지 보수하는데  모든
재정 수입을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거야. 그러니 여건이 좋은  일부
사찰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찰들이 현상유지에 급급하고 결국에는 그 많
은 사찰 수입을 다 어디다 썼느냐는 질책을 받게 되는 거지. 파계사의  경우
만 하더라도 막상 1년  예산을 결산하고 나면 세간에서 말하는 것 처럼 '속
빈 강정'에 지나지 않아. 특히 사찰의 올바른 운영을 위해서는 사찰운영위원
회가 정착이되어야 하고, 주지나  삼직 등 소임을 맡은 스님들에 대한  일비
를 총무원 등이 통일해서 정해 줘야 한다.

  끝으로 이번 조계종 사태의 한 원인이었던 선거제도나 기타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스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찰운영위원회를 정착시켜야한다. 또 재적사찰  갖
기 운동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총무원이 본사 등을  다그쳐서라도 시행해야
한다. 지난번 처럼 신도분담금이라는 돈문제를 먼저 꺼내는 것이 아니라  재
적사찰을 갖은 불자의 수가 8~90%에 달했을때 자연스럽게 분담금얘기를 해
야한다. 지금처럼 분담금을 내라고 하니 또 돈 걷어들이려는 수작이라고  반
발을 하지. 재적사찰을  가진 불자들이 90%정도되면 신도들이 알아서  자기
의 재적사찰에 대한 애사심(愛寺心)이 생겨 내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잘 낼
거야. 특히 현행 제도에 있어서 잘못된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고쳐야 해. 끝
으로 스님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심기일전해서 신도들과 국민들에게 존경
과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청정해져야 한다. 또 스님들은 참선이든, 간경이
든, 염불이든, 대중을  위한 봉사든, 포교든 어느 한가지는 희생정신을  가지
고 열심히 해야 한다.

  대담·정리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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