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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황우석 옹호, 지관 스님의 콤플렉스!
이름 코지 날짜 2006-01-18 [21:39] 조회 6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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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근의 도전인터뷰]

‘100억원 모금’ 불교계에서 다른 목소리 내는 조성택 <불교평론> 주간
지율이나 황우석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는 무모함과 순진함에서 동일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가톨릭과 기독교가 생명윤리를 내세워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서양 윤리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엄호사격과 함께 황우석 교수에 대한 전폭적 지원에 나섰던 한국 불교계의 황우석 감싸기가 멈출 기미가 없다. 줄기세포의 실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외부세력 음모론’을 제기했던 불교계는 줄기세포 연구가 총체적 조작과 사기극으로 판명났지만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자고 외친다. ‘황우석 박사 지키기 재가불자들의 모임’을 이끌고 있는 동산반야회 김재일 회장은 “황 박사의 연구 재개와 원천기술 재현을 위한 100억원 재단 설립 범국민운동본부 설립” 방침을 밝혔고, <법보신문>에 따르면 성금 기탁 의사를 밝힌 스님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불교계의 내부 인사인 조성택 교수(고려대 철학과·불교학 전공)가 자신이 주간으로 있는 <불교평론> 2006년 봄호 권두언을 통해 “불교계의 황우석 감싸기 중단”을 요구하며 자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겨레21>은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에 대한 황 교수의 해명 기자회견이 열린 직후인 1월12일 오후 조성택 교수를 만나 불교계 내부를 향해 칼날을 세운 이유를 물어봤다.


2002년엔 나 혼자 황우석을 지지했다


곧 나올 <불교평론>을 통해 불교계의 황우석 옹호 분위기, 특히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황우석 지지 발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이건 단순히 황우석씨에 대한 옹호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 가톨릭은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자신들의 종교적 생명윤리에 저촉된다는 것을 파악해 반대했지만, 동시에 그것이 주는 유용성을 살리려는 나름의 노력의 결과로 성체 줄기세포 연구에 1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가톨릭이 역사상 사회 문제에 관여하면서 축적한 노하우다. 하지만 불교계는 세속 문제에 대해 말하는 논리가 약하고 역사적 경험과 노하우도 적다. 근현대에 발생한 문제에 대한 대응도 상당히 미숙했다. 황우석 옹호는 종교 간 경쟁이 펼쳐진 현대적 다원주의 종교 체제에서 불교계가 지닌 콤플렉스가 작용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콤플렉스를 말하는 것인가.

=서구에서는 불교가 과학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종교라며 관심을 갖고 있다. 이것이 지나쳐 불교가 과학적이라는 얘기까지 한다. 황우석 감싸기는 한국 불교가 서양이 불교를 보는 이런 관점을 너무 많이 받아들여 “우리 불교는 이런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기독교보다 더 현대적인 종교다”라고 내세우려는 의식이 강하게 나타난 것이다. 근대 이후 현재까지 우리 역사에서 기독교가 종교로서 한 역할과 비교하면 불교의 역할은 적다. 문화적으로 불교가 우수하다는 자부심은 있지만 근대 이후 불교는 극히 제한적인 역할을 했고, 오히려 반사회적·반민주적·반민족적 행태를 보여왔다. 이런 콤플렉스가 과학의 문제(황우석 사건)를 계기로 터진 것이다. 황우석 사건은 불교계의 호재였다. 무의식적으로 불교계가 만회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 것이다. 불교가 교리적 측면에서 이런 문제에 기독교보다 좀더 유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는 좋은 지점으로 생각한 것이다. 불교와 과학은 다루는 세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호보완적일 수는 있지만 불교가 과학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 (사진/ 윤운식 기자)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은 줄기세포 연구에서 서양 논리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며 동양 논리를 강조했다. 과학적 연구에 유용한 측면도 있는 것 아닌가.

=기독교와 달리 불교는 생명 개념 자체를 창조주에 의한 것으로 신성시하지 않기 때문에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논의는 가능하다. 다만 논의를 하되, 불교적 입장뿐 아니라 다른 세속적 사항, 과학과 윤리, 인류의 역사에 대한 다양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고려를 생략한 채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이 자기 입장을 먼저 개진한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돌아가신 전임 총무원장 법장 스님도 (줄기세포 연구 지지에) 적극적이었다. 그동안 불교학계의 논의를 보면 찬반이 나뉘었다. 하나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배아가 생명이냐 아니냐는 논외로 하고 이것이 가져다줄 요익중생, 즉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자비의 윤리가 더 크고 그게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뜻이라는 이유였다. 반대 논리는 비록 배아라 할지라도 생명으로 탄생할 수 있는 연장선에 있으므로 배아에 손대는 것은 ‘불살생’의 불교 윤리를 해친다는 것이었다. 불교학계에서 이 문제를 최초로 얘기한 2002년 <불교평론> 주최 생명윤리 세미나에서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찬성한 것은 유일하게 나뿐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동국대 교수 등 나머지 분들은 전부 반대했다. 난 코페르니쿠스의 연구에 대해 종교가 잘못 재단했듯 종교적 가치와 과학적 사실의 문제는 다를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찬성했다. 당시 동국대 김종욱 교수 등은 불교에서 생명은 연장의 개념이고, 배아는 생명이 될 수 있는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에 손대서는 안 된다며 반대했다. 난 깊은 감동을 받았고, 이후 더 깊이 연구해 2005년 춘계학술대회 때 반대자가 됐다. 그런데 2002년의 반대론자들은 이제 전부 찬성론으로 돌아섰다.


전두환 보호와 황우석 보호의 차이


왜 그런 태도의 변화가 일어난 것인가.

=난 법장 스님의 원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황우석이 불교인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랬을까. 정말 모르겠다. 그게 이상했다. 또 지금도 이해 안 되는 것은 불교계가 기독교와 달리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면 그 연구를 지원해야지, 왜 특정 연구자를 지원하냐는 것이다. 그건 황우석씨가 불교인이라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황씨 자신도 항상 염주를 두르고 다니지만, 불교계도 황씨가 불교인이라는 것에 상당한 비중을 두었다. 첨단과학에 종사하는 국민적 영웅인 황우석씨가 “나는 불교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불교인에게는 상당한 자긍심을 주었다. 그게 (황우석 지지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거기에 법장 스님, 지관 스님 등 조계종 총무원장이 앞장선 것인데, 문제 있는 태도다. 가톨릭 주교나 추기경이 거느린 스태프의 전문성은 대단하다. 반면 조계종 총무원장이 갖는 전문성은 대단히 미약하다. 교육 과정에서 차이가 나고 신부들은 재가자(속세에 머문 교인)와 연대가 밀접한 데 반해, 조계종은 재가자의 개입을 제한하고 자기들끼리 한다. 불교계가 사회 현안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고 역사적 노하우도 적다 보니 대응이 미숙하고, 이번 (황우석 교수 파문) 같은 현안에 대한 발언도 상당히 촌스럽다. 불교계가 최근 세사에서 일반 정서와 달리 행동한 게 백담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받아들인 것인데, 이번 경우도 흡사하다. 그런데 전두환 보호는 사실 종교의 역할이다. 정치적 고려를 한다면 전두환을 받아들이면 안 되지만 정치 논리를 넘어 용서와 화해라는 종교 논리가 있었다는 점에서 황우석 감싸기보다는 더 나은 사건이었다.

전두환을 받아들인 것보다 황우석을 두둔하고 감싸는 게 훨씬 나쁜 행동이라는 것인가.

=그렇다. 황우석은 사실의 문제였다. 모든 사실이 종결된 다음에 과학자가 아니라 인간 황우석을 불교계가 받아들이고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모르겠는데, 과학이라는 사실의 문제, 이미 조작이라고 명백히 밝혀졌는데도 자꾸 감싸는 것은 문제가 있다. 좋게 보면 우직하고 의리파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불교계가 그렇게 무분별하게 과학자 황우석을 감싸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 그건 아니다.

그럼에도 지관 스님이 황우석을 옹호하는 태도를 바꿨다는 기미는 없다. 혹시 불교계 전반이 황우석 옹호에 공감한 것 아닌가.

=불교계의 말없는 다수는 오히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다만 찬반이 쪼개진 상황에서 이미 돌팔매 맞고 있는 사람에게 돌 하나 더 던질 수 없어 침묵할 뿐이다.

불교계에서는 황 교수에게 원천기술의 재현 기회를 주자며 100억원 모금 운동까지 일고 있는데.

=말이 안 된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종교도 하나의 단체고 하나의 구성원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공익적 연구에 민간기업의 돈이 투여되는 것을 우려한다. 100억원의 모금 주장은 황우석과 친한 특정 단체나 기업에서 황우석에게 100억원을 주겠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또 황우석의 연구 결과가 정말로 요익중생을 실현할 정도인가. 갈 길이 엄청나게 먼데, 100억원으로 끝날 문제도 아니다. 100억원 지원설은 그간의 지원을 볼 때 불교계의 스타 만들기 차원이지 진정으로 국익이나 요익중생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관 스님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서양 윤리라고 무조건 황우석 연구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성체 줄기세포 연구 지원이라는 나름의 대안도 내놓았고, 개신교의 어른인 강원룡 목사가 배아 줄기세포 연구도 가능하다는 신학적 입장을 제기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배아가 생명이라고 해서 당장 연구 성과가 나오는 이것을 금지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불교계도 그렇게 다른 논리가 나올 수 있다. 우린 기독교와 다르기 때문에 줄기세포 연구에 찬성할 수 있다는 것은 교리적으로도 설득력이 없다.

△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공격받는 황우석 교수를 엄호사격하며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지난해 12월10일 병원에 입원한 황 교수를 방문한 지관 스님. (사진/ 연합)


지율의 위험한 독선주의와 폭력


불교계에서는 그런 비판적 의견이 별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 말없는 다수가 있다. 지관 스님이 얘기한 것에 대해 동국대 교수 등 불교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이 감히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 현안 분석과 전문가적 안목이 필요한데, 그런 싱크탱크도 없이 그냥 총무원장의 개성이 드러나는 발언을 막 하는 것은 미숙한 행동이다. 불교도 세속 문제에 전문가적 안목을 갖춰야 한다. 전문성 없이 자꾸 불교적 논리만 갖다대니 항상 각론에서 논리가 달리고 밀리는 것이다.

어떻게 현안에 대한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가.

=출가자와 재가자가 좀더 긴밀한 연관을 가져야 한다. 출가자만의 집단, 출가자 우위는 곤란하다. 깨달음만 추구하는 조계종 중심의 출가자 집단이 아니라 일반 불교 지식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근대화 과정에서 기독교는 정치·교육·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부작용을 일으켰지만 긍정적인 역할도 했다. 하지만 불교계에서 한 역할은 아무것도 없다. 거의 무임 승차해왔다. 만해 한용운의 경우도 조계종단에서는 결코 띄우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결혼도 했고, 대처를 주장했다. 하지만 근대 정치·사상·문학에서 드문 스타고 그를 통해 불교가 가지는 사회적 이미지도 좋아지기 때문에 못 놓는 것이다. 그런 연장선에서 자꾸 황우석씨를 붙잡아두려는 것 같다.

지율 스님의 계속되는 단식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지율이나 황우석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는 무모함과 순진함에서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환경 문제는 사실의 문제다. 얼마나 훼손하는지, 개발하지 않는다고 다 보호되는지 등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 그런데 사실 문제는 간과한 채 자기 가치관의 심증적인 문제만 갖고 덤벼드는 게 있다. 환경과 과학 문제는 한국 불교계가 먼저 선점했다고 자부하는 분야다. 환경 문제는 더욱 그렇다. 환경이 근대화 이후에 빚어진 여러 문제를 다룬 것인 만큼 전통 종교들이 거기에 목소리 낼 지분이 있다. 실제 새만금 개발 반대 삼보일배, 지율의 단식 등 사회적 이슈를 선점해왔다. 그런데 한 사람의 목숨 건 단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대중과 함께 가야 할 문제다. 또 환경단체와 달리 종교인의 환경운동은 다른 지점이 있어야 한다. 새만금 사건 때 당진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했는데, 종교인은 내 뜻을 이루겠다고 이 엄청난 일을 벌일 수 없는 것이다. 삼보일배도 내 뜻을 이루는 게 목표가 아니라 무엇이 잘못됐는지 자신까지 부정의 대상으로 삼아보는 수행 과정이라야 한다. 무엇을 이뤄야 한다는 것은 환경운동가들의 시위와 다를 바 없다. 그런 부분이 전혀 구분 없이 이뤄지고, 그렇게 성급하게 행동하는 것은 결국 근대화 과정에서 불교가 한 일이 없고 사회적 지분이 없다고 하는 나름의 자책감, 콤플렉스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율 스님의 단식이 환경과 생명 존중의 중요성을 일깨운 긍정적 측면도 있지 않는가.

=물론,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우리 내부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도롱뇽이, 배아가 생명이다 어쩌다 할 정도로 고도의 생명윤리를 가졌다면 육식 문제도 깊이 성찰해야 한다. “도롱뇽이 아파요”라고 말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간과하는 식육 고기의 도축 과정에 대해 불교계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건 자기 모순이다. 또 불교 사찰 내에서 벌어지는 비환경적인 재건축 등 엉망진창인 일들은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그대로 놔두면서 천성산만 가지고 그러는데, 정말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반 환경단체 활동가라면 그냥 자기 목표가 ‘천성산 지키기’고 그것만 하면 된다. 하지만 종교인이기 때문에 자기 입장도 한번 물러서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종교인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태도인데, 그런 점에서 (지율 스님은) 차별성이 없다. 나만 죽으면 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독선주의고 엘리트주의다. 나 하나 죽어서 된다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이냐.


아줌마 보살들만 있으면 다다?


불교계를 이렇게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불교계 안에서 생존이 가능한가.

=난 너무 궁금한 게 있다. 나는 황우석, 지율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불교가 깨달음이 아니라 행복의 종교가 돼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것은 바로 조계종의 본질적 문제에 바로 칼을 들이댄 것이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다. 그런 블랙홀 같은 분위기가 기괴하고 음산하다. 아는 스님들에게 여쭈면 그냥 웃고 “할 말이 없는 것이겠지요”라고 답한다. 기본적으로 깨달음이 가능한가란 의문이 가능하고, 조계종의 화두선은 이미 말도 안 되고 물건너간 것이라는 비판도 많다. 조계종 존립의 근거 자체를 뒤흔드는 비판인데도 그냥 가만히 있다. 달라이라마가 히트를 치는 것 등은 한국 사회가 불교에 대해 다른 방식의 해답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데도, 조계종은 거기에 답을 못 내놓고 있다. 자기 정체성을 고민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그냥 블랙홀이다. 돌아오는 답이 없다.

왜 그런가.

=너는 떠들어라, 그래도 우리는 아줌마 보살들이 있다는 것이다.

출처=한겨레신문


어떻게 생각 하시는 지, 어떻게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 지에 대해 궁금해서 올립니다. 뜨거운 감자이기에 조심스럽지만.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면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본각  이글을 저도 읽고 많이 심사숙고 했습니다. 저도 제 주위에 불교신자들이 있었서 황우석 사태에 대해서 의견을 들어보면 황우석에 대하여 호의적 반응을 보여서 저도 내심 당황스럽습니다. 내가 너무 냉혹하다는 느낌이 들정도로요 그러나 과학은 사실과 검증으로 생명이 유지되는 속성을 기반으로 하기때문에 논문조작은 용서할수 없는 학문적 범죄라고 사려됩니다. 수사결과 줄기세포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면 황우석은 희대의 사기꾼으로 용서받을수는 없을것입니다. 지금 인터넷은 온갖 음모론으로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있지만 일단은 황우석은 학문적 사망선고를 받은것은 사실입니다. 천만다행으로 줄기세포가 존재함이 증명되면 상황은 다시 역전될것으로 보이지만 그 가능성은 지극히 낮을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불교계가 이문제에 대하여 냉정한 객관적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불교계는 너무 황우석 문제에 올인하는 태도에 대하여 저는  상당히 비판적입니다. 이문제는 음모론 국익론은 문제 해결에 도움은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설사 이 사건 배후에 거대한 음모가 있더라도 과학적 토대가 되는 줄기세포가 없다면 과학자로서 황우석은 사기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문제는 한번 회원분들이 토론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01/19 22:24  댓글 고치기  댓글 지우기

숨결  뭐 어떻게 생각하기는... 알아서 생각해야지.

이 일은 본질적으로 鼠一匹이지만 그러나 泰山鳴動하게 되었으므로 화두가 될 수 밖에 없으나 화두로서 그리 건강한 것이 아님.

화두.. 개나발 소나발이 다 話頭가 될 수 있는 거지만 그래도 公案 즉, 그래도 좀 품격을 갖춘 화두 거리가 되어야 할 터인데...
발제로서 게시한 조성택의 한겨레 이너뷰 같은 따위는 인적,물적으로 그런 수준과 품격을 전혀 충족하지 못함. 시장의 소음일 뿐.

차라리 위에 있는 본각님 댓글이 그런 공안으로서 훨씬 더 합당함.

다만 국익론과 마찬 가지로 그 반대편의 언사, 즉 윤리에 대한 트집과 학문적 사기에 대한 판결(?) 역시 똑같은 수준의 시장의 흥정일 뿐으로 하등의 고려 거리가 되지 못함.

다만, 음모론이란 부분은 단지 떠도는 풍설이 아니라 상당 부분 신빙성이 있다는 데 주의하여야 함.
과학에 있어서 반복가능성 보다도 일개 논문의 엄밀성이 우위에 있다는 희안한발상이 권력을 득한 세상임.

시장의 소음을 우리가 다시 반복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고.. 그런 것 말고 피가되고 살이되는 화두로써 논의를 해볼 필요가 있겠음.

다시 얘기 하겠음. 01/20 07:37  댓글 고치기  댓글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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