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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고]불교의 가르침에 비추어 본 줄기세포연구 /김성철
이름 숨결 날짜 2005-11-07 [19:12] 조회 6132
 
이종린님.. 현직 의사기도 하고 수행으로부터 나온 정견으로 보입니다.
기독교 일각에서 훼방 음모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기독교도 다 그런 것이 아니고 찬성하는 쪽은 오히려 더 적극적입니다.
실재로 기독교계 병원도 많고 의료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이 문제에 우리 불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아낌없는 성원을 하여야겠습니다.
물론 이 새로운 과학이 계율에 위배되는 것인 가에 대한 성찰과 비판은 늦추지 말고...

아래에 비교적 간단한 글을 퍼왔지만 바른 시각을 정립하는데 꼭 필요한 글입니다.
김성철 교수 역시 전직 의료인(치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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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가르침에 비추어 본 줄기세포연구

김성철(경주 동국대 불교학과)


[한국불교학회 2005년 여름 워크샵]


최근 생명공학과 관련된 황우석 교수의 연구성과가 알려지면서 ‘줄기세포’란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이에 대한 윤리적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줄기세포란 뼈나 간, 심장, 신경, 피부 등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장기 세포로 분화 가능한 ‘기초 세포’인데, 식물의 ‘줄기’에서 수많은 가지가 솟아나는 데 비유하여, ‘줄기세포(Stem cell)라고 명명되었다. 그런데 줄기세포는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배아(胚芽)줄기세포’이고 다른 하나는 ‘성체(成體)줄기세포’이다. 성체줄기세포는 각종 장기세포에 잠재되어 있든지 혈관 속에서 혈액과 함께 우리의 몸을 순환하다가, 손상된 장기를 아물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극히 미량이라서 채취하기가 지극히 어렵긴 하지만 ‘탯줄 속의 혈액’을 의미하는 제대혈과, ‘피를 만드는 조혈기관’인 ‘골수’에 비교적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줄기세포 가운데 윤리적 문제와 관련하여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배아줄기세포’이다.
줄기세포는 생체 밖의 시험용기에서 배양이 가능하며, 적절한 물리화학적 조건이 주어질 경우 시험용기 내에서 신경, 혈관, 연골, 심근 등 그 어떤 장기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는데, 특히 배아줄기세포가 과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채취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의료기술을 통해 고통 받는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분명히 ‘선(善)’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개발하고 시술하는 과정에서 ‘악(惡)’이 행해져야 한다면, 우리는 그런 의료기술의 연구나 개발을 선뜻 허용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학은 마치 양날을 가진 칼과 같아 가치중립적 학문이라고 한다. 그 쓰임에 따라 선도 되고 악도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줄기세포연구를 포함한 생명과학기술은 그 쓰임은 물론이고 그것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윤리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수정란을 시험관에서 줄기세포단계까지 배양하여 각종 실험을 하는 것은, ‘성체로 성장 가능한 개체’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살인행위’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잡을 것인가에 따라 ‘살인의 범위’는 달라진다.
의학자나 일반과학자들의 경우 수정란이 형성된 후 자궁 내벽에 착상되기 전까지 약 보름간은 생명체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종교에서는 수정란 이후부터 생명체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기독교나 유태교, 이슬람교와 같은 셈족의 종교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은 죄악시해도 사람 이외의 동물을 죽이는 것은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반면, 불교나 힌두교, 자이나교 등 인도(印度)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인간을 죽이는 ‘살인’은 물론이고 다른 동물을 죽이는 ‘살생(殺生)’ 역시 ‘악한 행위’로 간주한다. 줄기세포연구를 포함한 생명과학기술, 또 의료기술의 개발과 시술을 위한 윤리적 지침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까닭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종교적 신념과 가치관이 이렇게 각양각색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먼저 이야기할 것은 불교적 견지에서 볼 때 세포 내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 자체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전자가 조작가능하다는 사실 역시 이런 자연의 섭리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조작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의 인지(認知)는 과거의 ‘미신적 생명관’에서 벗어나 ‘무상과 무아와 공과 연기’의 진리에 접근한다. 또, 복제인간이 탄생한다고 해도 불교의 업(業) 이론은 흔들리지 않는다. 나의 체세포를 복제하여 만들어지는 복제인간은 만화영화에 나오는 ‘인조인간’이나 ‘사이보그’와 같은 존재가 결코 아니다. ‘나와 시간을 달리하여 탄생하는 일란성 쌍둥이’이다. ‘신체를 만드는 업종자(業種子)’만 나의 그것과 유사한 ‘독립적 인격체’이다. 쉽게 말해 나의 ‘쌍둥이 동생’일 뿐이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장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복제인간이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불교윤리적으로 조망할 때 ‘유전자를 조작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살생’이 문제가 된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선과 악의 기준 가운데 가장 간단한 것으로, ①‘살생하지 말라’, ②‘훔치지 말라’, ③‘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거짓말하지 말라’, ⑤‘술 마시지 말라’는 재가자의 오계(五戒)를 들 수 있는데, 여기서 가장 중시되는 것이 첫 번째 덕목인 ‘살생하지 말라’는 것이며 이는 ‘사람은 물론이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이지 말라’는 것을 의미한다. 줄기세포연구는 물론이고 의약품이나 의학기술의 개발을 위해 이루어지는 실험이나 시술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살생’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생명체’를 불교용어로 ‘중생(衆生)’이라고 부르는데, 불교에서는 동물과 식물과 광물 가운데 오직 동물만을 중생으로 간주한다. 현대 생물학에서는 동물은 물론이고 식물도 생물에 포함시키지만, ‘중생’의 범위에 식물은 들어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식물에는 영혼이 부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식물은 유전인자를 갖는 세포의 집합체일 뿐이다. 동물의 몸 역시 세포의 집합체이긴 하지만, 손발과 같이 의지적 행위를 할 수 있는 행동기관을 갖고 있고, 눈이나 귀와 같이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끼는 통로를 갖고 있기에 영혼이 부착될 수가 있다. 불교용어로 말하면 ‘업(業)’을 짓게 하는 ‘운동기관’과, ‘과보(果報)’를 받게 하는 ‘지각기관’을 가진 동물만이 생명체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동물의 육체에서 영혼이 떠나가는 것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한다. 그렇게 죽은 영혼은 자신이 깃들 육체를 찾아 허공을 떠돌아다닌다. 일반적으로 ‘귀신’이라고 말하는 이런 영혼을 불교에서는 ‘중음신(中陰身)’이라고 부른다. 사망과 탄생의 ‘중간(中間) 단계에 있는 존재’란 의미이다. 물론 중음신의 몸[色陰]은 엷은 빛과 같아서 일반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중음신은 사망 후 늦어도 49일째 되는 날 수정란에 부착된다. 그 때 수정란은 비로소 새로운 육체로 자라나게 되고 그에 부착한 중음신은 다시 새로운 생(生)을 시작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우리의 삶이 이런 식으로 무한히 되풀이 된다고 보기에 생명체의 범위에 수정란까지 포함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수정되기 이전의 정자나 난자에는 영혼이 부착되어 있지 않기에 생명체가 아니다. 낱낱의 세포도 생명체가 아니다. 영혼이 떠나간 뇌사자의 몸도 생명체가 아니다. 따라서 정자나 난자, 일반세포, 뇌사자의 몸 등을 해체하는 것은 ‘살생’ 또는 ‘살인’ 행위가 아니다. 또 배아줄기세포에 자극을 가해 분화된 신경세포나 심근세포 등도 생명체의 부속품일 뿐 생명체 그 자체는 아니기에 그것을 조작하거나 해체하는 것을 살생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난자와 정자가 결합된 후 성장을 시작한 ‘수정란’을 해체하는 것은 분명히 일종의 살생행위이다. 또 그런 ‘수정란의 외피’에 체세포를 주입하여 줄기세포까지 성장시킨 후 그것을 해체하는 것도 살생에 속한다. 과거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켰던 기술에는 이런 유의 ‘살생’이 수반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황우석 교수가 개발한 기술은 많은 점에서 과거의 기술과 다르다. 난자와 정자가 결합된 수정란을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난자의 외피’에 체세포를 주입시킴으로써 줄기세포를 얻는다. 불교적 견지에서 볼 때 여기서 사용된 ‘난자’나, ‘체세포 조각’은 생명체가 아니다. 또, 이렇게 난자의 외피에 체세포를 주입하여 얻어진 ‘유사(類似)수정란’의 경우, 자궁과의 연결부인 태반을 이루는 부분을 갖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자궁 내벽에 착상시켜도 성체로 성장하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런 과정을 통해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행위에 대해, ‘살생’, 또는 ‘살인’이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에 황우석 교수가 개발한 기술은 기존의 기술보다 윤리적인 문제를 덜 일으킨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물론 그 언젠가 이런 ‘유사수정란’을 자궁 내에 착상시켜서 성체로 성장하게 하는 기술이 개발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살생의 죄업은 ‘모르모트’나 ‘원숭이’와 같이 온전한 감각능력을 갖춘 실험동물을 살해하는 죄업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별것도 아닐 수 있다. 거대포식자인 인간에게 음식물과 생활용구와 의약품과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희생되어 온 다른 동물들의 눈에는, 지금 이렇게 줄기세포연구의 윤리성을 논하는 것이 그야말로 ‘인간 종(種: Species)들의 새삼스러운 호들갑’으로 비쳐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까지 전진해 온 인류문명이 한 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지금의 이런 문명에 대해 불교에서는 어떠한 답을 제시해야 할까? 원칙적으로는 육식을 금하고, 동물실험도 모두 중지해야 한다. 또 출가한 스님이 되는 것만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다. 그러나 이런 최선의 삶을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언덕 위에 서서, 굴러 내려가는 수레를 향해, 내려가지 말라고 외쳐보았자, 수레는 계속 굴러 내려가다가 나동그라지듯이,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을 향해 ‘이슬과 같이 맑게 살라’고 강요해보았자 ‘쇠귀에 경 읽기’와 같이 헛수고가 되기 쉽다. 굴러 내려가는 수레를 보았을 때, 보다 바람직한 행동은 수레에 뛰어올라가 그 방향을 조정하여 안착하게 해 주는 것이리라. 불교의 가르침을 우리 사회에 접목시킬 때에도 이는 마찬가지다. 최선책(最善策)이 아니라 차선책(次善策)을 제시해야 한다. 신라시대에 원광법사 역시 ‘살생하지 말라’는 최선의 윤리지침의 수준을 낮추어 ‘잘 가려서 살생하라[살생유택(殺生有擇)]’는 차선책을 제시한 바 있다. 줄기세포연구에 대한 불교적 차선책은, 실험이나 시술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살생의 악업’을 극소화 하고, 그런 연구를 통해 이룩할 ‘이타(利他)의 선업’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실험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짓게 되는 살생의 죄업을 가능한 한 줄이고, 이런 실험을 통해 얻어진 기술이 연구자나 시술자 개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난치병을 치료하는 이타적 목적으로 쓰이도록 하는 일이다.
연구자의 마음가짐 역시 줄기세포연구 도중 발생할 수도 있는 죄를 선으로 돌리게 한다. 모든 연구자는 연구도중 희생되는 생명들에 대한 연민과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나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 받는 환자들을 치료해 주기 위해 이 연구를 한다’는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항상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떡쇠  으앙~~~ 댓글이 너무 길다고 날아가 버렸어요...
엄청 줄여서 다시 쓰면 먼저, 좋은 이야기를 읽게 해주신 숨결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병을 치료하시는 의사분들께서 중생들의 "고"를 치유하시는 대의왕의 길에 드신 것에 예경하고 찬탄올립니다. 그리고 본문에 "대부분의 중음신은 사망 후 늦어도 49일째 되는 날 수정란에 부착된다. 그 때 수정란은 비로소 ~"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느 경전에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독화살의 비유에도 불구하고 사후의 일에 자꾸 관심이 가는군요.
아시면 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합장! 11/28 23:50  댓글 고치기  댓글 지우기

강태공  황우석... 문제는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었다는 거....  생로병사를 가능한한 피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본능적인 생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거대한 합작품이라는 거....   08/18 15:26  댓글 고치기  댓글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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