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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메롱 하는 나한님, 딸기코 나한님
이름 숨결 날짜 2005-11-07 [20:48] 조회 7708
 

'메롱' 하는 나한님, '딸기코' 나한님

진천 보탑사 500표정 500나한님과의 대화

임윤수(zzzohmy) 기자

 

▲ 천태만상을 하고 있는 500나한님의 표정엔 우리네 사는 모습이 다 담겨 있습니다. ‘메롱~’거리며 장난이라도 하듯 혀를 내밀고 있습니다.
ⓒ2005 임윤수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고, 어떤 표정을 보고 계십니까? 한 번 골똘히 생각해 보십시오.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의 표정은 어떤 생김새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 누군가는 어떤 생김새라고 그 표정을 느끼거나 생각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누군가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흔히 '생긴 대로 놀고 있네'라고 비아냥거리듯 말들을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정작 '생긴 대로 사는 게 아니고, 사는 대로 생겨간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 말이 맞는 듯합니다. 주변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여유 없이 살던 누군가의 얼굴에서는 왠지 궁핍한 표정을 느꼈는데, 그랬던 그 누군가가 넉넉해지니 표정이나 생김새조차 넉넉하게 보여 지는 경우를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 사람에 같은 얼굴이지만 사는 모습이 달라지니 분명 생김새나 표정도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생긴 대로 놀고 있네'라는 말의 함축적 의미처럼 사람이 생긴 대로 살아가는 거라면 제아무리 열심히, 긍정적으로 살아도 사람의 운명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그 생김새에서 사람의 운명이 결정난다는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생긴 대로 사는 거라면 성형수술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생김새가 운명이라면 인위적인 성형수술에서 무슨 효과를 기대하겠습니까.

그러나 사는 대로 생기는 거라면 얼마든 그 생김이나 느낌은 달라질 수 있으며, 그게 현실인 듯합니다. 만사에 부정적이고 불만투성인 사람이 좀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산다면 그 변하는 삶에 따라 그 사람의 생김새나 표정에서 우러나는 느낌도 전혀 달라지니 말입니다. 짜증스럽고 불만투성이던 얼굴에서 부드러운 웃음과 평온함을 볼 수 있게 될 겁니다.

'생긴 대로 사느냐, 사는 대로 생기느냐'가 자칫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무한궤도의 반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 사람들의 표정이나 생김새는 사는 대로 생겨간다는 게 맞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 귀를 후비고, 이빨을 쑤시며 손가락으로 배꼽 콕콕 쑤시는 모습이 영낙 없이 우리네 사는 모습입니다.
ⓒ2005 임윤수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던 아니면 상대방은 자신을 모르지만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뭔가 편안한 느낌을 받게 되는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야기시키는 그런 사람도 없지는 않습니다. 받은 게 없음에도 후덕해 보이는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왠지 짜증스러워 보이는 그런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보기만 해도 그날 하루 종일 재수가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도 있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그 사람, 그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쳤던 어깨가 추슬러지고 웃음을 띠게 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모양입니다. 턱이나 머리를 괴고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도 역시 우리네 모습입니다.
ⓒ2005 임윤수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빨간 입술로 TV화면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 보이는 반응도 다양합니다. 어느 연기자의 빨간 입술을 보고는 섹시하다며 상당한 호감을 나타내지만 어느 정치인의 빨간 입술을 보는 날엔 심한말로 '재수 없다'거나 '역겹다'며 채널을 돌리는 걸 보았습니다.

여성의 비슷한 빨간 입술임에도 누구의 빨간 입술은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누구의 빨간 입술은 역겨움을 불러일으킨다면, 최소한 그 빨간 입술의 주인공인 정치인은 채널을 돌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재수가 없거나 역겨움을 느끼게끔 살아가기에 그 삶의 태도나 방식이 느낌이나 생김새로 드러나 그런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거라 생각됩니다.

▲ 하심이라도 하듯 절하는 모습이나 박수치고 ‘앗싸~’거리며 어깨 들썩거리는 듯한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2005 임윤수
절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이나 이런저런 경배의 대상들은 대개 꼿꼿이 정좌한 채 두 눈 지그시 내려 감고 아주 근엄한 모습이나 표정으로 연상될 겁니다. 그 경배의 대상은 아미타부처님, 석가모니부처님, 미륵부처님과 같이 수많은 부처님중의 한 분일 수도 있고,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같은 보살님 중 어느 한 분일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난존자나 가섭존자와 같은 부처님 10대 제자 중 한 분이거나 16나한이나 500나한 중 어느 분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범접하기 어려울 만큼 근엄할 표정들만 하고 있을 거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법당에 모셔진 그런 분들 중에는 인간적이며 사실적이고도 해학적인 표정을 하고 계신 분들도 참 많습니다.

▲ 꽹과리를 치고 날라리를 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엉덩이가 들썩거립니다. 각자로 공양 받는 나한님들의 사는 모습도 우리네 사는 모습과 다를 게 없습니다.
ⓒ2005 임윤수
절을 찾아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법당에 모셔진 불상이나 배경들을 세세히 살펴보면 멀기만 한 경배의 대상이 아닌, 이웃집 아저씨 같고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나 삼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모습이나 표정을 하고 있는 나한님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웃집 아저씨가 매일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에 매우 사무적인 모습만 하고 있습니까?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나 삼촌이 어른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그런 모습, 점잖고 의젓한 그런 표정만을 보이고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가장으로 위엄있어 보이던 이웃집 아저씨나 아버지도 가끔은 어린애처럼 장난을 하고 목젖이 보일 만큼 크게 웃거나 너털웃음을 웃기도 할 겁니다.

▲ 극적 극적, 나한님들도 등이 가렵고 가슴 쪽도 가려운 모양입니다.
ⓒ2005 임윤수
사람이 다가가도 모를 만큼 깊은 고민에 빠지거나 고뇌에 가득찬 모습도 볼 수 있고 오금이 저리거나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노한 표정을 하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등이 가렵거나 귀가 간지러우면 극적거리며 등을 긁거나 귀를 후비는 그런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며, 감당하기 힘들 만큼 커다란 슬픔을 당하면 체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엉엉 우는 그런 모습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인간들이 살아가며 지을 수 있고 보게 되는 희로애락의 천태만상의 표정을 다 담고 있는 나한님들이 있습니다. 결코 멀게만 느껴졌던 그 경배의 대상, 법당에 모셔진 나한님들이 이웃집 아저씨나 아버지처럼 가까이 다가서게 만드는 그런 표정들을 하고 있다니. 물론 할아버지처럼 인자한 모습에 '에헴~' 거리며 권위를 나타내는 모습이나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듯한 그런 모습,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호되게 꾸중을 할 듯한 그런 표정을 하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 아주 행복한 모습의 나한님들입니다. 박장대소, 너털웃음을 볼 수 있으니 인생의 희와 낙을 보는 듯합니다.
ⓒ2005 임윤수
나한이란 부처님의 제자가 도달할 수 있는, 깨달음의 최고 경지에 다다른 각자(覺者)를 의미합니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이들이니 인간들이 평생 굴레처럼 지고 다녀야 하는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들로부터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존경받을 만한 그런 사람을 의미합니다. 한 때 나한이란 말은 부처님을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사용되었지만 부처님과 구분하기 위하여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뜻하는 지칭으로만 사용하게 되었답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통달한 대상을 통상적으로 10대 제자와 16나한 그리고 500나한을 들고 있습니다. 문헌이나 경전 등에 따르면 이들 16나한이나 500나한은 실재했던 인물들이라고 하니 그들의 사는 모습은 결국 인간들의 사는 모습과 다를 게 조금도 없습니다. 단지 속인들과는 달리 깨달음을 얻어 망상의 번뇌와 탐·진·치 삼독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그 지혜와 삶이 부처의 경지를 이뤄 중생의 몸에서 부처의 몸이 된 사람들이라는 차이가 날 뿐입니다.

▲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봐’ 누군가와 진지하게 뭔가를 이야기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2005 임윤수
이러한 나한님을 모신 법당을 절마다 같은 의미지만 조금씩 다르게 나한전이나 응진전 또는 영산전이란 편액을 달고 있습니다. 절에 가서 어떤 편액을 달고 있던 나한님이 모셔진 전각을 찾아가면 대개의 경우 16나한님을 모셨으며 흔치 않게 500나한님을 모신 전각을 보게 됩니다. 나한님을 조성한 재료에도 목재나 석재, 석고등이 사용된 경우도 있지만 동주물로 조성된 나한님도 있습니다.

진천에 있는 보탑사에 모셔진 500나한님은 그 표정이나 생김새가 각각 다르게 한분 한분의 원형이 석고로 조각되고, 이 석고 원형을 이용하여 동주물로 조성한 나한님으로 그 조성기간만 꼬박 3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영산전을 찾아 나한님들을 관심 있게 살펴보면 재미있게도 나한님 한분 한분의 표정이 각각 다르다는 겁니다. 더불어 살지만 사람들 개개인의 모습이나 표정이 각기 다르듯 나한님들도 각양각색의 표정과 각각의 생김새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떨어진 옷을 깁고 먹을 것을 챙겨야하는 나한님들의 모습에서 우리네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이 고스란히 연상됩니다.
ⓒ2005 임윤수
이웃의 친근한 모습들이 나한님 모습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고뇌에 찬 이웃집 아저씨의 모습도 거기에 있고, 소탈하게 웃는 그런 아저씨 모습도 나한님 표정에 담겨 있습니다. 아저씨의 슬퍼하는 모습뿐 아니라 분개하고 버럭 화내는 그런 모습도 다 담겨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 각각의 생김새에 각각의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알게 되고 볼 수 있듯 그곳 영산전에 가면 그동안 보아왔던 모습, 보았지만 까마득하게 잊혀진 모습, 지금껏 본 적이 없지만 살아가면서 보게 되거나 경험하게 될 이런 저런 모습이 다 담긴 그런 모습이나 표정을 하고 있는 나한님들을 볼 수 있습니다.

▲ 왕년에 얼마나 술을 마셨기에 딸기코가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한때 음주가무를 즐겼을지언정 수행하고 정진해 깨달음의 경지에 달하니 경배의 대상이 되었을 겁니다. 이 나한님의 모습에서 각자와 속인이 불이(不二)가 아님을 희망합니다.
ⓒ2005 임윤수
나한님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희로애락을 넘나드는, 깊고도 진한 '사는 모습'의 주인공이 됩니다. 참으로 친근한 그들의 모습에서 멀고도 높게만 느껴졌던 깨우침의 가능성, 열심히 기도하고 마음 닦으면 자신도 번뇌의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가슴에 품게 되니 마음은 넓어지고 머리는 맑아집니다.

사람 사는 데 왕도가 있나요.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화장을 하듯, 고통이나 복받쳐 오르는 서러움을 참지 못해 슬퍼하거나 울어야 할 때가 있으면 기쁨과 즐거움에 웃을 날도 있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올라갈 날이 있으면 내려갈 날도 있음을 알고 겸손하지만 적극적으로 살면 될 겁니다.

사는 대로 생겨가는 게 사람의 생김새며 인상이라면, 인간의 삶에서 가장 훌륭한 성형전문가와 코디는 바로 자신의 마음이며 삶의 자세입니다. 마음 한번 넉넉히 먹고, 여유롭게 생각하면 궁상맞던 얼굴에도 윤기가 흐르고 사악했던 눈빛에도 온기가 생길 테니 결과적으론 멋지고 호감 가는 그런 인상을 가지게 될 겁니다. 외형적 인상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 가장 멋진 성형과 우아하고도 화려한 화장은 바로 본인의 마음에 달렸음을 알게 됩니다.

눈빛 마주친 500나한님이 표정과 느낌으로 뭔가를 들려주는 듯합니다. 마음에 귀 쫑긋 세우니 '사람은 생긴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겨가니, 남 속이지 말고, 죄 짓지 말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면 진정 아름다운 모습, 남들이 닮고 싶어 하는 그런 인상을 가지게 될 터니 여여한 삶을 살아가라' 하시는 듯합니다.

누군가를 향해 장난기 가득한 '메롱~'이라도 하듯 혓바닥 길게 내밀고 있는 나한님이나, 엄청난 애주가처럼 딸기코를 하고 있는 나한님이 무언으로 들려주는 사는 모습에서, 깨우침과 어리석음이 둘이 아닌, 각자와 둔자가 둘이 아닌 불이(不二)와 삶의 향기를 느낍니다.

사진들은 진천 보탑사 영산전에 모셔진 500나한님 중 33나한님이며, 한분의 나한님 마다 그 존귀한 이름이 있습니다. 보탑사에서는 오는 10일(목요일) 개분불사에 따른 500나한님 점안식과 영산재가 있습니다. 10대 제자와 16나한 그리고 500나한님 한분 한분을 찍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신 보탑사 지광큰스님과 능현 주지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5-11-06 19:15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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