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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마구니 ] 정토교 경전 (6)
이름 운영진 날짜 2001-09-19 [22:12] 조회 7323
 
[번  호] 164        [등록일] 2001년 05월 19일 01:29      Page : 1 / 24
[등록자] 마구니          [조  회] 2 건           
[제  목] [ 마구니 ] 정토교 경전 (6)                                 
───────────────────────────────────────
정토교 경전

(1) 타방정토 사상

  대승불교의 성립에 중요한 요소가 된 타방정토(他方淨土) 사상의
발생에 대해서는 이미 앞장에서 설명하였으나, 일반적으로 유력한
정토사상으로서는 다음의 3종이 있다.

  1. 미륵보살의 도솔천 정토
  2. 아촉불의 동방 묘희국 정토
  3. 아미타불의 서방 극락세계 정토

미륵보살의 도솔천 정토

  이 가운데 가장 일찍이 성립된 정토사상은 미륵보살의 도솔(도率
Tusita)천 신앙이다. 미륵보살(Maitreya)은 석존의 뒤를 잇는 소위
미래불로서 이미 원시경전에 거론되고 있으나, 대·소승이
제경전에도 등장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그는 광범위한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솔천은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삼계로 구분되는 계층적
세계상 가운데 욕계에 속하는 하늘로 인간적 욕망이 가득찬
세계이지만, 석존과 미륵보살이 이곳에서 이 세상으로 하강하는
신성한 장소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러한 신앙은 그 발달과정에
있어 다음과 같은 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미륵보살이 붓다로 이세상에 출현하는 것은 자아 인간의
수명이 8만세에 이르는 시기로 그 때에 이 세상은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전륜성왕이 출현하여 평화가 유지되고 생리적 고통이
사라지며 어떠한 번뇌도 없는 사회가 실현되는 것으로
신앙되었다(<중아함경 說本經>, 빨리어文 長部 제26경 등).

  둘째, 이 미래사회의 상태가 화려한 정토로 묘사되고, 미륵보살은
도솔천으로부터 하강하여 그곳에 태어나 붓다가 된다. 우리도
선행을 쌓으면 보살을 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이야기된다(<증일아함경> 제48품의 3, <미륵下生成佛經>,
<미륵大成佛經> 등).

  셋째, 도솔천이 정토로 묘사되고, 이제부터 56억만년(또는 56억
7천만년)의 미래에 미륵이 그 도솔천으로부터 이 세상으로
하강하지만 그때까지는 도솔천에 머무르며 법을 설한다. 사람들이
보살에 귀의하여 그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공양하면 도솔천으로
왕생할 수 있다고 한다(<觀彌勒菩薩上生도率大經>).

  넷째 유형의 경전으로는 한역의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
뿐이다. 비록 티벳역도 현존하지만, 이는 한역으로부터의 중역이기
때문에 이것이 과연 인도에서 성립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도솔천으로 상승하여 미륵을 만난다는 신앙은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소승불교의 학자 세우(世友,
Vasumitra), 승가라찰(僧伽羅刹, Sangharaksa) 등은 선정에 들어가
도솔천의 미륵을 만났던 것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대승
유가행학파의 학자 무착(無着, Asanga)에게도 동일한 이야기가
있다.

  도솔상생은 생천(生天) 신앙의 일부이다. 생천신앙은 주로
재가자의 신앙이었지만, 출가자 사이에도 유포되었다. 그리고
아촉불·아미타불의 정토사상 형성도 생천신앙과 관계없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정토를 주제로 한 경전에
도솔천이 언급되거나, 그 정토는 타화자재천이 머무는 곳보다
훌륭하다는 등의 기술은 이러한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아촉불의 정토

  아촉불(阿촉佛)의 정토신앙을 주제로 한 경전에는
아촉불국경>(2권 147년 지루가참역), <대보적경(大寶積經) 제6
부동여래회(不動如來會)>(2권 菩提流志역·티벳역)이 있다. 이에
의하면 동방으로 천의 세계를 지난 곳에 묘희국(妙喜國,
Abgirati)이 있는데, 일찌기 이곳에 대일여래가 출현하였다.

  그 아래 한 사람의 비구가 보살행을 닦으며 일체지(一切智)를
구하여 성냄·애욕의 마음·성문연각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을
서원하였다. 이에 의해 그는 아촉(Aksobhya, 不動의 의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나아가 그는 출가자로서의 계행을 지킬 것을
서원하고 이를 실행하여 성불하였다. 긔하여 그는 현재 묘희국에
머무르고 있다. 그 국토는 쾌적하고 음욕·악·병·추루함이
없으며, 여인에게 생리적 고통이 없다. 그러한 나라로 왕생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촉불이 전생에 행했던 것과 동일한 보살행을
닦으며, 아촉불과 그의 국토를 염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촉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경전은 여러 <반야경>, <유마경>,
<비화경(悲華經)>, <화수경(華手經)>,
<수능엄삼매경(首능嚴三昧經)> 등이 있다. 특히 반야경은
아촉불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데 반해, 아미타신앙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음은 유명한 사실이다. 아마도 역사적
성립과정에서 이 양자는 어떠한 관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도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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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  경
산스끄리뜨 본                      (Max Muller 南條文雄 출판 등)
<無量淸淨平等覺經> 4권              支婁迦讖역(147∼186)  (약칭 후한역)
<阿彌陀三取三佛薩樓佛壇過度人道經>
<대아미타경> 2권                    支謙역(223∼228년)    (약칭 오역)
<무량수경> 2권                      강승개역(252년)        (약칭 위역)
<대보적경 제5회><무량수여래회> 2권  보리유지역(706∼713년) (약칭 당역) 
<대승무량수 장엄경> 3권            法賢역(908년)          (약칭 송역) 
티벳역(東北대학목록 No.49, 영인 北京版목록 No.706)
------------------------------------------------------
  2. 소  경
산스끄리뜨본(Max Muller 출판) <아미타경> 1권        구마라집역(402년)
<정역정토불타수경> 1권                              현장역(650년)
티벳역(동북대학목록 No.115, 영인북경판 목록 No.783)
------------------------------------------------------
  3. 관  경(본문과 같음, 424∼453년)
------------------------------------------------------


정토삼부경

  아미타불과 극락정토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경전은 상당히
많지만, 직접 이를 주제로 한 것에는 다음의 세 경전이 있다.
정토는 극락정토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신앙이 가장
유력하므로 정토의 대표로 간주되며, 일반적으로 아미타불신앙을
정토교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를 담은 경전을 정토삼부경이라고
한다.

  1. <무량수경> 2권, 강승개(康僧鎧역) (약칭 <大經>)
  2. <아미타경> 1권, 구마라집역(약칭 <小經>)
  3. <관무량수경> 1권, 강량야사(畺良耶舍역) (약칭 <觀經>)

  이는 옛부터 널리 애독되어 온 경만을 정토사상에 대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정토사상과 관계된 경들의 일람표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의 <무량수경>의 산스끄리뜨원전은 네팔에서 전승된
것이다. 한역 5본은 번역된 시대에 따라 각각
후한역·오역·위역·당역·송역으로 약칭된다. 이들 여러 번역본
사이에는 상당한 상위와 변화가 나타나 있다. 특히 가장 오래된
후한역과 오역은 다른 본과 상당한 차이가 있으므로 학자들은 이를
<초기무량수경>이라고 하여, 그 이외의 것 즉 <후기무량수경>과
구별한다. 그런데 한역 가운데 산스끄리뜨본과 비교적 일치하는
것은 당역이다.

  두번째의 <아미타경>은 매우 짧은 경전이다. 이의
산스끄리뜨원전은 일본에서 발견된 것으로 9세기 이후의
실담(悉曇)문자로 쓰여져 있다. <아미타경>은 <무량수경>에
비하여 그 내용은 훨씬 간단하여 마치 그 일부를 발췌한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세번째의 <관무량수경>은 앞의 두 경보다 발달된 사상을 담고
있지만, 그 표제와 같이 관불(觀佛)을 설하는 경전의 하나로
아미타불과 극락정토의 장엄함을 마음에 관하는 실천방법을
16관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는 한역만이 현존하며, 산스끄리뜨본도
티벳역도 전래되지 않고 있다. 다만 위구르어역의 단편이
발견되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인도에서 성립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에 따라 중국성립설, 중앙아시아성립설 등이 제시되고
있다. 5세기 초, 중국에서는 관불의 체험을 설하는 경전류가 상당히
번역되었다. 앞에서 열거한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도 이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현재 학계에서는 중국성립설이 유력하다.
이에 따르면 위경이 될 수 밖에 없지만, 번역된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면 원전은 5세기경에 성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2) 아미타불과 극락

무량수경의 가르침

  이상과 같은 세 종류의 경이 애독되었다 할지라도 중요한 사상은
모두 <무량수경>에 제시되어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일찍이 세자재왕여래(세자재왕여래)가 계실 때, 그의 아래에
법장(법장, Darmakara)이라는 비구가 장차 성불하리라는 뜻을 세워
보살의 행을 닦고 있었다. 그는 많은 불국토와 뛰어난 곳을
선택하여 이상의 정토를 건설할 것을 결의하고, 이를 위해
48개조(이 수는 경전에 따라 차이가 있다)의 서원(본원)을 세웠다.
이는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만약 내가 부처님이 될 때에 시방(十方)세계의 중생이 지심으로 신앙하여
    나의 극락세계에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되, 그 마음이
    일어남이 예컨대 일념 또는 십념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곳에
    태어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동안에 나는 결코 부처님이
    되지 않으리라. 다만 오역(五逆)의 중죄를 범한 사람, 정법을
    비방하는 사람이 그러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경우는
    별개이다(위역의 제18원).

  이와 같이 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리라는 서원을 하나하나
성취한 그는 아미타불이라는 이름의 붓다가 되었다. 그 이후
10겁이 경과되었지만, 그는 현재 극락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있다. 그는 그 옛날의 서원에 따라 현재에도 중생을 극락으로
왕생케하고 있는 것이다.

  극락세계는 서방으로 십만억의 국토를 지난 곳에 있는 이상의
낙원이다. 그곳의 대지는 칠보로 이루어져 있고, 평평하여 산이
없다. 기후는 춥지도 덥지도 않다. 칠보의 나무가 우거져 있고,
연못에는 8공덕의 물이 가득차있다. 그리고 항상 법음이 들려온다.
대지에는 꽃들이 만발한 가운데 한 그루의 거대한 보리수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인간은 평등하며, 능력·모습이 뛰어나고,
괴로움을 모른다. 음식물을 애써 구할 필요가 없으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얻어진다. 그곳에는 보살과 아라한만이 있으며 여성은
없다.


아미타불

  아미타불의 원어는 Amitayus(무량한 수명, 無量壽) 또는
Amitabha(무량한 빛, 無量光)이다. 아미타는 이 Amita를 소리나는
대로 옮긴 것이지만, 현존하는 산스끄리뜨어 경전들에 단순히
Amita라는 칭호는 보이지 않는다.

  이 두가지의 이름이 있는 점에 대해 최근의 학자들 사이에는
Amita-abha라는 이름이 선행하고 후에 Amita-ayus가
사용되었다는 견해, 반대로 아미타-아유스가 선행하고 후에
아미타-아바로 불렸다는 견해, 또는 원래는 별개그룹의 사람들이
각각 다른 명칭을 사용하였지만 정토교 경전에서 이 양자가
통일되었다는 설 등, 여러가지의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두가지의 명칭이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상이한
두 붓다를 지시하는 것으로 추측할 여지는 없다. 그렇다면 그
명칭보다도 신앙의 실태가 앞서 성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또한 아미타유스, 아미타바 모두 특수한 어휘도 아니며, 이들이
의미하는 내용도 불교에 있어 일반적인 것이다. 불타가 무한한
빛과 무한한 수명을 지니고 있다는 사상은 이미 원시불교경전
가운데 암시되어 있으며, 소승의 대중부도 이러한 점을 말하고
있다. 나아가 대승경전에서는 이러한 점이 보편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화엄경>의 비로자나불도 <법화경>의 석가모니불도 무한한
빛과 무한한 수명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렇다면
무량수·무량광은 이와 같은 붓다의 성질을 일반화하기 위해
채용된 이름이다. 따라서 극락에 있으면서 그곳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활동을 한다는 점이 이 불타의 특수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가장 먼저 성립된 것에 속하는 오역과 후한역의 두 경에서는 이
붓다를 아미타불(또는 無量淸淨佛)로 부르면서 그를 입멸열반하는
존재 즉 유한한 존재라고 한다. 교리적으로는 모순된 설명이지만,
이는 이 붓다가 특수성과 일반성 모두의 성질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아미타불의 인격적인 활동은 그의 전신이 법장보살의 서원에 잘
나타나있다. 이 서원이 없다면 아미타불신앙의 본질은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기이한 점이기는 하지만, 이 법장보살의 설화는
<무량수경>에 보일 따름으로 <아미타경>, <관무량수경>에는
보이지 않는다(다만 후자에 법장비구 48大願이라는 인용은 있다).

  아미타불을 언급하고 있는 다른 경전에도 법장보살의 설화는
나타나 있지 않다. 그 대신 아미타불의 전신으로서 다른 여러
인물들의 인격적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이 보살
자체가 독립된 인격적 의의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이 서원을
나타내는 방식은 앞에서 한가지 예를 들었던 바와 같이 "만약
자신이 붓다가 되었을 때에는 이러한 상태가 되고자 한다"라고
하여 붓다의 입장에 근거한 실천을 제시한다.

  보살의 실천은 "그 서원이 실현되지 않는 한 성불하지
않으리라"고 하여 소극적으로 표현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법장의 서원은 중생이 귀의해야 할 붓다의 구제를 표현하는 것이
주안점으로서, 중생이 따라야 할 보살의 실천으로서의 의의는 적지
않은가 생각된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후한역과 오역의 두 경에만 나오는
것이지만, 석존이 법장보살의 서원에 대해 언급한 후, 이를 들은
아사세(阿사世, Ajatasatru)왕 이하 5백인의 청중이 자신들도 장래
성불하여 아미타불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을 발원하는 일절이 있다.
이 일절은 전후의 문맥과 관계없이 갑자기 이야기되고 있는
것으로, 번역의 시기에 삽입되었거나 또는 원전에 언급되어 있는
경우 후대에 부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내용을
삽입·부가함으로써 이 두 경은 아미타불신앙을 자력적인
보살행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本願의 내용

  법장보살이 세운 48서원을 본원(本願)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전세(前世)에서 세운 원이라는 뜻이다. 이 본원의 수는 일반적으로
독속되는 위역에서는 48원이지만, 여러 본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즉 후한역과 오역은 24원, 산스끄리뜨본은 47원, 위역과
당역은 48원, 티벳역은 49원, 송역은 36원으로 되어 있다. 이의
성립사적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논의되고 있지만, 크게
24원계와 48원계(47원과 49원을 포함한다)로 나뉜다.

  후한역과 오역의 24원은 수는 같아도 내용은 상당히 다르다.
이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후한역의 24원은 오역의 24원을 정리한
것이다. 오역(통칭 <대아미타경>)이 그 번역 연대에 있어
후한역보다 늦지만, 경의 형태는 오역이 더욱 고대적 형태를
지니고 있음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위역의 48원을 그 내용에 따라 분류하면 대체로 다으과 같은
문제로 정리될 수 있다.

  1. 극락에 왕생하는 사람을 정신·육체 모두 이상적인 인격으로
실현시키리라는 원.
  2. 극락으로 왕생코자 하는 사람을 인도하리라는 원.
  3. 정토 또는 붓다의 이상적 상태를 실현하리라는 원.

  이중 가장 여러번 이야기되는 원은 첫번째의 것으로,
둘째·셋째의 원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종교적 실천의
문제로는 두번째의 종류가 중요하며, 이에 관한 원은 제18, 19,
20원이다.

  제18원은 앞서 한 예로 인용하였던 것이지만, 시방세계의 중생이
지심으로 아미타불을 신앙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다지 1념 또는 10념만을 일으킬지라도 그곳에 왕생할 수 있다는
취지의 원이다.

  제19원은 보리심을 일으켜 왕생을 원하는 자는 그의 임종시에
아미타불이 많은 시자를 이끌고 나타나 극락으로 반가이
인도한다는 것이다(來迎).

  제20원은 아미타불의 이름을 듣고 극락에 마음을 두고 선행을
쌓으며 이를 회향하는 사람은 그곳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 여러 불국토의 중생으로 하여금 아미타불의 이름을 듣고
발심(發心)·수행하여 깨달음으로 나아가게끔 하리라는 원이
여러차례 언급되고 있다. 제18원의 "1념 또는 10념"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염불이라고 하여 중국 등지에서는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는 칭명염불의 의미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본래는
'아미타불을 염하는 마음을 한번 또는 10번을 일으킨다'는
의미이다. 염불은 붓다를 깊이 생각하는 것이 본래의 의미인
것이다.


신앙과 도덕

  <무량수경>의 산스끄리뜨본은 처음에는 아난(阿難, Ananda)을
대상으로하여 설법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대상이 미륵보살로 변한다. 이와 같이 설법상대가 갑자기
변하는 점에서 미륵에 대한 부분은 후대에 성립된 것으로 추측하는
학자도 있다.

  여하튼 아난을 상대로 설법이 이루어지는 부분에서는 왕생 또는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이 강조되고 있지만, 미륵을 상대로 설법이
이루어지는 부분에서는 경전의 가르침을 수지하고 선을 쌓으며
노력·정진해야 함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즉 전자가 신앙적·타력(他力)주의적이라면, 후자는
도덕적·자력(自力)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우리에 친숙한 위역에는 미륵을 상대로 설법이 이루어지는
부분에 다섯가지 악을 경계하여야 함을 길게 설하고 있다. 이는
보통 오악단(五惡段)으로 불린다. 그런데 이 가르침은
후한역·오역·위역에만 나타나 있다. 이 사상은 피안의
정토보다는 현실의 예토(穢土)에서의 실천의 의의를 강조한 것으로
유교의 도덕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므로 이는 번역시에
중국에서 부가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이 부가되었다 할지라도 미륵에 도덕적인 가르침이
강조되었다는 점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오역과 후한역에 있어 미륵보살은 보다 빨리
등장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설법에는 극락에 왕생할 사람들을 그
공덕에 따라 '삼배(三輩)'로 나누는데 그 설명이 매우 도덕적이다.

  '상배(上輩, 제1배)'는 출가수행자로서 엄격한 금욕적인 수행을
하며, 아미타불을 염하는 마음을 중단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임종시에 아미타불의 내영을 받아 극락에 태어나며, 항상 붓다
가까이에 있으면서 불퇴(不退)의 보살이 된다.

  '중배(제2배)'는 출가생활을 감내하지 못하지만, 재가자로서
보시(출가자에 대한 공양, 탑의 건립) 등의 선행을 쌓으며 극락에
왕생하고자 염하는 마음을 하루낮 하루저녁도 중단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임종시에 아미타불의 화신을 보고 극락에 태어난다.
그러나 붓다를 직접 뵐 수는 없으며, 극락의 변경에서 복락을
누리다가 500년 후에 붓다 가까이에 가 법을 듣고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하배(제3배)'는 상배와 같이 출가도, 중배와 같이 선행을 쌓지도
못하지만, 애욕을 끊고 정진하며 일심으로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10일낮 10일밤을 중단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임종시에 꿈속에서
아미타부를 친견하고 사후 극락에 태어난다. 그러나 그는 중배와
마찬가지로 붓다를 직접 뵐 수 없으며, 500년 후에 붓다 가까이에
가 지혜를 얻는다.

  이와 같은 삼배의 구별은 있지만, 어떠한 사람도 불살생 등의
십선도(十善道)를
행하여 번뇌를 멀리하며, 재가생활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여가가 있을 때에는 수행에 힘쓰고 애욕을 끊어
부인을 멀리하며 하루낮 하루밤 또는 열흘낮 열흘밤 동안
제계청정히 하여 마음으로 왕생을 원하는 사람은 극락에 태어나
상배와 같이 된다고 한다.

  이 삼배의 설은 위역에서는 아난을 상대로 한 설법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도덕적 요소가 감소되어 있다. 그 대신 삼배의
설을 통하여 붓다와 극락에 대한 신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산스끄리뜨본과 당역에서는 삼배의 명칭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도덕적 의무의 가르침은 전혀 생략되어 있다. 다만
선근(善根)을 심는 것만은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검토하여
볼 때, 정토교의 사상은 처음에는 도덕적이었지만 점차 신앙적
요소가 강조되어 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정토교의 사상이 변화되었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본질이
발휘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정토교사상의 본질은
원시대승 이래의 붓다신앙에 뿌리를 둔 것으로, 그 핵심이 되는
사상은 아마도 <반야경> 보다 먼저 성립되었을 것이다.

  대승불교사상에는 <반야경>으로 대표되는 보살 중심의 입장과
정토교경전으로 대표되는 붓다중심의 입장이 있으며, 이 양자는
밀접한 상호규정에 의해 대승불교의 사상이 전개되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




(log-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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