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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범망계본150
이름 동봉스님 날짜 2018-07-13 [05:57] 조회 61
 
기포의 새벽 편지-1276
범망계본150
동봉


마흔 여덟 가지 경구계
08 대승계를 저버리지 말라3

포살하는 불자들은 일심으로 경청하라
거룩하신 부처님이 몸소설한 말씀으로
대승세계 상주하는 경전이고 율장이니
보살계를 받은이는 마음깊이 새겨두라

그렇거늘 불자들이 이승들과 말을맞춰
서가모니 부처님이 몸소설함 아니라며
연각이나 성문이나 이승경율 따른다면
보살계를 받은자로 옳지못한 일이니라

외도들의 삿된경전 삿된계율 앞세워서
대승경전 비난하면 옳지못한 방법이라
보살계를 받았으나 보살이라 할수없고
범망계본 여덟번째 경구죄를 범함이라
-----♡-----

앞서 우리는 불설佛說과 함께
비불설非佛說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주제를 부처님의 직설이냐
부처님의 직설이 아니냐로 구분지었지요
다시 말해서 서가모니 부처님이
몸소 설한 말씀이 직설이고
서가모니 부처님이 설하신 게 아니면
결국 직설이 아닌 까닭에 비불설입니다
따라서 일체중생이 불성을 지님은 맞지만
모든 중생이 부처라는 설은 픽션입니다

만일 누가 대승불교의 장점을 묻는다면
그게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모든 생명체는 다 불성을 지니며
불성을 닦아 언젠가는 성불할 것이며
이를 떠나서는 부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대승불교에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보다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 수가 더 많다고요
모든 생명체는 곧 중생을 얘기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있는 것들입니다

이 중생에는 사람을 비롯하여
온갖 축생과 야생과 물고기와 새들과
곤충과 박테리아 등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도 빠뜨리지 않은 것들이지요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인
사하라 모래 수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사하라보다 한반도 20배는 더 큰 게
남극대륙에 있는 남극 자갈 사막이지만
모래 사막으로는 단연코 사하라 사막이지요
이렇게 많은 중생 수보다 더 많은 분들이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부처 수입니다

그것도 그냥 몇 배 많은 게 아니라
중생 수에 중생 수를 곱한 수보다 많은 게
바로 이 땅의 부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단지 불성을 지녀서가 아니라
바른 깨달음을 이룬 부처 수를 얘기합니다
내가 지금 말장난을 하는 것이라고요?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깨달은 부처를 앞에 두고
어떻게 말장난을 하겠습니까
이것이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부처입니다

그런데 초기불교에서는
대승에서 일컫는 이른바 이승二乘이나
또는 소승불교小乘佛敎에서는
부처님을 서가모니불에게 한정시킵니다
서가모니불 외에는 인정할 수 없고
오직 서가모니불의 가르침만이
비로소 불교佛敎로서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불설이니 비불설이니 하는 것은
초기불교에서 하는 얘기일 뿐입니다
대승불교에서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서가모니불 가르침이 아니라 해도
만에하나 부처님 가르침에 부합하다면
곧 부처님 말씀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설이냐 아니냐가
불교를 판가름한다 하더라도
대승불교에서는 그리 구애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은 이의 눈으로 보면
지구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그대로 다 부처님이고
이들이 설한 게 결국 대승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부처'의 높임말입니다
여래如來, 세존世尊, 붓다Buddha는 
인도 불교에서 "깨달은 자"를 가리킵니다
다른 말로는 '눈 뜬 자"의 뜻이기도 합니다
깨달은 자는 누구든 부처라고 할 수 있지만
보통 서가모니불Gautama Buddha을
개별적으로 가리키는 곧 고유명사입니다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서가모니불은
이 밖에 과거불過去佛이란 개념이 있고
미래불未來佛이란 개념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승불교 초기불교라 하여
일반적으로는 서가모니불 한 분 뿐이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서가여래 한 분에게
모든 것을 다 믿고 떠넘기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이승이나 소승불교에서는
현재까지 출현한 모든 부처가
총 스물 여덟 분이라 여기고 있으며
미래는 미륵불이 출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승불교에서처럼 모든 생명체가
반드시 부처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소승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모든 생명이 불성을 다 지녔다 하더라도
12가지 연기緣起 법칙을 깨닫고
닦고修 익힘行으로 번뇌가 사라지고
'고집멸도성제苦集滅道聖諦'를 깨달아
마침내 팔정도八正道를 몸소 실천했을 때
비로소 부처 경지를 인정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32상相 80종호種好를
그 몸에 온전히 갖추지 않으면
비록 장로長老는 될 수 있을지언정
부처라 이름하기까지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처는 내면은 말할 것도 없이
외형까지도 경전에서 표현한 것처럼
완벽하게 갖추었을 때 비로소 인정되지요
아무튼 우리는 소승과 대승을 떠나
머리가 곱슬곱슬하거나 뽀글뽀글 하고
도라면 같은 보드라운 손을 지녔으되
한 손을 위로 향하고 한 손은 땅을 향하며
이마 사이에 구슬 하나 박혀 있고
발바닥에는 법륜이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이 모습이 곧 부처의 본 모습입니다

아무리 처처불상處處佛像이고
나아가 사사불공事事佛供이라 하지만
아무나 붙잡고 부처님이라 하지 않습니다
축생, 야생, 새나 곤충이나 파충류나
나아가 저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아무것이나 부처님이라 일컫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느낌없는 세계보다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이고
후각적이고
미각적이고
촉각적이고
심리적인 것들로 채워진 까닭입니다

이에 비해 대승불교는 멋집니다
생각의 세계가 자유롭습니다
넓기로는 우주宇宙universe보다 넓고
작기로는 원자原子atom보다 섬세합니다
우주보다 더 넓은 것이 대승불교지만
한 생각 속에 모두 담기고
원자보다 더 섬세한 게 대승불교지만
우주의 품으로도 다 감쌀 수가 없습니다
대승불교 빛깔은 매우 자극적이어서
세상의 어떤 컬러로도 그려낼 수 없습니다

삼원색三原色three primary colors이 빚는
수천만억 컬러로도 담아낼 수 없지만
홀로그램hologram만으로도 그려냅니다
나는 대승을 사랑하지만 싫은 게 있습니다
이 보살계 마흔 여덟 가지 경구계 중
제8 '대승계를 저버리지 말라'에서처럼
소승과 이승을 비판하는 따위입니다
불설이라 해서 대승불교가 더 빛이 나고
비불설이라 해서 대승불교가
더 위축될 것이 없는데 왜 민감할까요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도처히 참지 못하여
끝내 불같이 화를 내고야 말겠지만
허공을 향해 팔뚝질을 한다고
허공이 노엽다며 언제 성 한 번 내던가요
대승불교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이라 해서
대승불교가 비불설이 되나요
만일 속이 찔릴 게 전혀 없다면
불설이면 어떻고 비불설이면 어떻습니까

'금강경金剛經'에서는 말씀하십니다
소위불법자所謂佛法者는
즉비불법卽非佛법이라고요
이른바所謂 불법佛法이라는 녀석者은
비불법非佛法에 즉卽해 있습니다
불법은 부처님이 설한 법이고
비불법은 부처 아닌 이가 설한 법입니다
깨달음을 이룬 부처佛가 설說했든
그냥 범부중생非佛이 설說했든
그게 진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대승불교의 아름다움은
자종위배自宗違背에 있습니다


[사진이여! 사진 속에 머물러 있지 말라!]


07/13/2018
종로 대각사 '검찾는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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