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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심경 강원
제목   반야심경 이야기089
이름 동봉스님 날짜 2017-09-27 [05:15] 조회 2055
 
기포의 새벽 편지-988
반야심경089
동봉


결분結分(04)
반야주般若呪(4)
고로알라 반야로써 바라밀다 하는말씀
아주아주 크나크게 신비로운 주문이며
크게밝은 주문이며 위가없는 주문이며
견줄수가 없으면서 평등하온 주문이라

이세상의 온갖고를 남김없이 제거하고
참스럽고 실다워서 허망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반야로써 바라밀다 하는주문
내가이제 설하리니 그주문은 이러니라
故知般若波羅蜜多是大神呪是大明呪是無上呪是无等等呪能除一切苦真實不虚故說般若波羅蜜多呪卽說呪曰-----♡-----

시무상주是無上呪다
'위가 없는'가르침이 아니라
그냥 '위 없는' 가르침이다
'위가 없고'와 '위 없고'는 느낌이 다르다
어떻게 다르냐고 만약 되묻는다면
솔직히 답변하기가 참 궁색하다
사언절은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
'위가 없는'이라 했으나 깔끔한 맛이 적다
생각한 것을 글로 표현한다는 게
그래서 어려운지도 모른다

무상無上의 뜻을 풀이한다면
그 위에 더 없이 높고 좋다는 뜻이다
그런데 진정한 무상無上이 뭘까
어떤 것을 무상이라 할까
위 상上 자와 아래 하下 자는
사진 편집 시스템에서 수직회전에 따라
상上을 아래로 내리면 하下가 되고
하下를 위로 올리면 상上이 되는 것처럼
알고 보면 매우 간단한 문제다

한글 모음 ㅏ 자를 놓고
내가 보면 ㅏ 자가 되지만
내 상대가 보면 ㅓ 자로 보일 것이고
오른쪽 사람이 보면 분명 ㅜ 자이지만
왼쪽 사람은 으레 ㅗ 자로 읽을 것이다
이 얘기는 하나의 실험에 불과하다
가령 우리가 지구 밖으로 나가거나
아니면 지구를 객관화시켜 놓고 볼 때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일까
북극이 위가 되고 남극이 아래가 될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놓고
특히 온갖 상대를 초월한 법을 놓고
시대신주是大神呪와
시대명주是大明呪에서
신비롭다거나 밝다는 것은 모르겠으나
크다는 그림씨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여기 이르러 '위가 없다'니
초월의 가르침 '반야주'를 놓고
어떻게 위 없고 있고를 논할 수 있겠는가

가령 반야주가 질량을 지닌 물체라면
위가 없다고도 할 수 있고
아래가 없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반야바라밀다주는 모든 것을 떠난 주呪다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도 없고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뜻意도
빛, 소리, 향기, 맛, 닿임, 법도 없고
눈의 알음알이眼識界로부터
뜻의 알음알이意識界에 이르기까지
열 여덟 가지 세계도 다 벗어난 주呪다

어디 오직 그뿐이겠는가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으로부터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와
유有, 생生, 노사老死에 이르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성하는
12가지 유전연기流轉緣起도 당연히 없고
도미노 효과domino effect처럼
무명이 무너지면 노사도 삽시에 무너지는
환멸연기還滅緣起마저 다 없는 마당에
어떻게 위가 없고 있고 할 게 있느냐다

12연기의 유전과 환멸이
'생명의 나무tree of life'의 세계라면
사성제, 팔정도의 거룩한 진리는
중생과 부처의 동기를 파헤친 가르침이다
게다가 지혜도 얻을 것도 없다 했으니
혜도慧度와 복도福度마저 완전히 비워낸
그야말로 티끌 하나 없는 반야주인데
어떻게 모나고 둥글고 길고 짧으며
위 아래, 큼 작음, 많고 적음이며
밝고 어둡고 신비로움을 논할 수 있겠는가

반야주에 그림씨를 쓴다는 것은
엄청난 자종위배自宗違背라 할 것이다
스스로 세운 정의에 어긋남이다
유세에서 세운 공약을
당선되자마자 깡그리 저버림이다
반야주에 모양이 있는가
반야주에 무게가 있는가
반야주에 색깔이 있는가
반야주에 부피가 있는가
반야주에 수량이 있는가
반야주에 크기 따위가 있을 수 있는가

모양이 있고 무게가 있고
색깔과 부피가 있고
수량과 크기 따위가 있을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 마음껏 얘기할 수가 있다
어찌하여 하느님을 논할 수 없는가
모습이 없고 무게 색깔 부피 수량이 없고
크기와 향기와 맛과 촉감이 없고
심지어 목소리조차 없기에
하느님을 생각대로 얘기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신비로움을 얘기하고
밝음과 위 없음을 논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어항에 물을 가득 채우고
붕어를 집어넣은 뒤 모이를 주었다
매일 매일 모이를 넣어주자
붕어는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물은 점차 탁해졌다
붕어가 내놓는 배설물도 장난이 아니다
맑은 물로 새롭게 갈아주지 않는 한
숨쉬기 힘들 정도로 혼탁하다
붕어가 조금만 움직여도
탁수로 어항이 뿌옇다

어항을 비우고 새로운 물로 갈았다
이제 붕어가 멋대로 헤엄을 치더라도
물은 결코 흐려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를 다 비웠기 때문이다
반야주도 새로 물을 간 어항과 같다
붕어가 마음껏 헤엄쳐도
다시는 흐려지지 않듯이
어떤 그림씨 움직씨 어찌씨를 쓰더라도
반야주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야주가 매우大 신비롭다神 하더라도
반야주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반야주에게 매우大 밝다明고 한들
반야주가 그런 말에 관심이나 갖겠는가
반야주가 '위 없다無上'고 추켜준다 해서
황홀해하며 어쩔 줄을 모르겠는가
그러므로 일차적으로는 자종위배이겠으나
이는 중생의 견지에서 보는 것일 뿐
반야주 자체에는 그런 논리가 아예 없다

그러므로 반야주에 대해
크다 작다 많다 적다 모나다 둥글다
길다 짧다 아름답다 추하다고 할 수 있다
밝다 어둡다 신비롭다 펑범하다
옳다 그르다 빠르다 더디다
높다 낮다 따위를 마음껏 논할 수 있다
하여 하느님에 대해서도 마음껏 표출한다
그림으로 그려내고
조각으로 깎고
주물로 붓고
시와 소설로 수필로 맘껏 표현해도 된다

옛날 윈먼云门yunmen(?~949)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다
"큰스님, 무엇이 부처입니까?"
이에 윈먼선사禪師가 그 자리에서 답했다
불교사전을 뒤적이지도 않았고
경전에서 찾지도 않았다
"깐시쥐에乾屎厥ganshijue니라"
깐시쥐에가 똥치는 막대기든
또는 마른 똥덩어리든
신성한 존재나 물질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부처님을 '깐시쥐에'로 부른다 해서
부처님이 깐시쥐에가 되는 것도 아니듯
하느님을 어떤 모습으로 표현하든
각자 마음에 자리한 하느님은 늘 그대로다
이처럼 반야주에 최고 찬사를 바치더라도
반야주는 늘 그대로 반야주이고
내버려 두어 상대하지置之度外않더라도
반야주는 스스로의 격을 낮추지 않는다
아! 어찌 찬탄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이를 염송念誦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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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oo.gl/images/dBjR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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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2017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



(log-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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