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작은마음공부)

 천불동 나알란다

 영산회상(법문)

 만화,동화방

 법구경 이야기

 반야심경 강원

 천불사(불교사 공부방)


  반야심경 강원
제목   반야심경 이야기096
이름 동봉스님 날짜 2017-10-06 [05:21] 조회 349
 
기포의 새벽 편지-997
반야심경096
동봉


결분結分(11)
즉설주왈卽說呪曰(2)

이세상의 온갖고를 남김없이 제거하고
참스럽고 실다워서 허망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반야로써 바라밀다 하는주문
내가이제 설하리니 그주문은 이러니라
能除一切苦真實不虚故說般若波羅蜜多呪卽說呪曰
-----♡-----

우리가 가끔 쓰는 말이 있다
"말로는 하루에도 골백 번 준다고 하지
하지만 내 손에 들어와야 준 게 되지"라고.
늘恒 차茶마시고 밥飯먹는 일事처럼
빌리고 갚는 일은 일상日常이다
요즘 사람 살아가는 사회가
신용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는 하는데
개인적으로 돈을 빌려 주고 나서
약속한 때 되돌려 받는 문제는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상업상의 신용信用을
우리는 보통 크레디트credit라 한다
신용카드를 크레딧 카드라고 하지 아마?
거래상 크레디트에 문제가 불거지면
곧바로 컨피덴스信賴confidenc로 이어진다
사람 자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행동 하나 하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신뢰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 때 신임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이른바 트러스트trust 문제가 대두되기도 한다

점차 그러다가 나중에는
신망信望reputation에 금이 간다
레퓌테이션은 명성/명예를 뜻하는 말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마침내 종교적 믿음faith까지 잃으면
그야말로 하늘 아래 머리 둘 곳이 없다
얘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는 했으나
문제는 아주 작은 거래에서 시작된다
이는 이른바 돈거래만이 아니라
말과 약속, 생각의 거래도 마찬가지다

'즉卽의 법칙'은 매우 단순하다
생각의 세계가 현실로 이루어짐이고
말의 약속이 그대로 이행됨이 '즉의 법칙'이다
부동산이나 상품 거래에서도 쓰는 말인데
"아무리 많은 이야기가 오가더라도
말은 단지 말에서 끝날 뿐이다
계약서에 싸인을 해야 일이 성사된다"라고
'즉의 법칙'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이른바 '화엄법계연기華嚴法界緣起'는
'즉의 법칙'을 떠나 설명할 수 없다
이를 '상즉상입相卽相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즉卽'과 '입入'의 뜻이 무엇일까
즉卽은 내가 상대에게 나아가 하나됨이고
입入은 상대를 받아들여 나와 하나됨이다
나를 낮출 때 상대와 어울릴 수 있고
나를 비울 때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다

천정에 1만 개 전등이 설치되어 있다
서로 서로 비추며 홀을 대낮처럼 밝힌다
어떤 전등도 상대의 빛을 거부하지 않으며
자신의 빛에 대해 인색하지도 않다
9,999개의 빛을 온통 다 받아들이되
결코 차별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동시에 자기가 지닌 빛을
9,999개 등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되
어떤 경우도 인색하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등은 사랑과 미움을 모두 비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1만개 낱낱 등불이
자신을 상대불빛에 투영시킴이 즉卽이고
9,999개 불빛을 받아들임이 입入이다
만에 하나 서로 내 빛은 좋은 빛이고
상대 빛은 나쁜 빛이라 하여 거부한다면
빛과 빛이 혼돈을 일으켜 엉망이 된다
그러나 물리의 세계에서 그러한 일은 없다
애증愛憎과 호오好惡가 없는 까닭이다
내가 나를 비우고 상대 속으로 들어감이
이른 바 '즉의 법칙'이라고 한다면
'즉설'은 이미 설說과 하나가 된 것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설說의 영양소營養素는 기쁨이다
말씀說에 '기쁨'이란 영양소가 빠져 있다면
백천만겁 외더라도 공염불空念佛일뿐이다
기쁨의 영양소가 없는 까닭이다
이제 "즉설卽說하여 주呪로 말曰한다"
주呪에는 2개 입口이 들어있다
첫째는 능왈자能曰者이니
염불하는 반야행자般若行者의 입이고
둘째는 소왈설所曰說이니
부처님께서 설하신 '반야바라밀다주呪'다

지금까지 일반적인 해석은
'곧 주문을 설하여 말씀하시되'이며
나의《사언절 반야심경》에서는
'내가이제 설하리니 그주문은 이러니라'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즉설卽說하여 주呪로 말씀하시되'가 된다
즉설이란 이미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중생에게 기쁨을 주는 설說과 하나됨이다
이를 삼밀三密 중 구밀口密이라 한다

지금은 부처님께서 살아계신 때가 아니다
물론 정신에는 삶과 죽음이란 게 없다
그러나 그 분의 몸은 지금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신구의身口意 삼밀 가운데서
신밀身密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율장의 가르침만을 따를 뿐이다
하지만 부처님 말씀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기록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으레 '문자반야文字般若'로 새겨져 있다

부처님 말씀說은 모두 기쁨이다
중생의 고통을 뽑고 기쁨을 주는 말씀이다
부처님 말씀을 감로甘露로 표현함은
들어있는 영양소가 온통 기쁨인 까닭이다
기쁨으로 충만한 부처님 말씀을 접하며
그 속에 든 영양소를 섭취하지 않은 채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혀만 움직인다면
평생 남의 다리만 긁는 꼴이 되어
몸소 시원함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부처님 경전에 담겨 있는
단이슬甘露 영양소를 제대로 섭취하면서
가르침을 접할 때 비로소 제 것이 된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토를 달기도 한다
"알고 먹거나 모르고 먹거나
약에 들어있는 성분은 그대로여서
마음 쓰지 않아도 몸의 병을 낫게 한다"고.
그러나 이는 몸 병에 관한 것이지
마음 병을 다스림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곧 즉卽/即' 자는 그림문자象形文字로서
음식물皀 앞에 무릎卩꿇은 모습이며
부처님 전에 공양皀 올리는卩 모습이다
부처님 전 공양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손수 법당에 올라가 마지를 저쑤어야 한다
'즉卽'에는 '이미旣'의 뜻이 들어있다
이미 기旣 자와 곧 즉卽 자의 의미소皀가 같음은
둘 다 비슷한 뜻이 담겼다는 방증이다
이미卽 설說에 들어가 설과 하나가 되었다면
주呪로 외는 것만 남아있을 따름이다

그 주문(말씀)은 이러하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페북의 벗 안해선 거사님이 퇴촌에서 찍은
가을달秋夕/맨 아래가 원본 사진]


10/06/2017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



(log-off) 



반야심경 이야기097
반야심경 이야기095

번호 제    목 이  름 조회 등록일
198  반야심경 이야기099 동봉스님 274 10-09
197  반야심경 이야기098 동봉스님 302 10-08
196  반야심경 이야기097 동봉스님 352 10-07
195  반야심경 이야기096 동봉스님 349 10-06
194  반야심경 이야기095 동봉스님 350 10-05
193  반야심경 이야기094 동봉스님 355 10-04
192  반야심경 이야기093 동봉스님 350 10-03
191  반야심경 이야기092 동봉스님 344 10-02
190  반야심경 이야기 호외2 동봉스님 384 10-01
189  반야심경 이야기 호외 동봉스님 416 09-30
188  반야심경 이야기091 동봉스님 422 09-29
187  반야심경 이야기090 동봉스님 409 09-28
186  반야심경 이야기089 동봉스님 414 09-27
185  반야심경 이야기088 동봉스님 418 09-26
184  반야심경 이야기087 동봉스님 461 09-25

 
게시물 수: 198 /  검색:
[1][2][3][4][5][6][7][8][9][10]-[뒷10쪽] [14]  

천불동소개 |사이트맵 |운영진에게 |처음으로
 Copyleft 2001,2003 천불동(buddhasite.net)  All rights are ope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