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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라북도 정읍 석탄사 청소(晴韶) 스님
이름 운영진2 날짜 2003-10-30 [23:27] 조회 6971
 

전라북도 정읍 석탄사 청소(晴韶) 스님

글· 사기순 사진·윤명숙


“선수행으로 마음자리를 깨달아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체득해야 진정한 자비행이 나옵니다”

전라북도 정읍시 칠부면 반곡리 389번지 석탄사, 들길 논길 지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을 몇 번이나 가로지르고 산길로 들어선 지도 한참, 가도가도 석탄사는 보이지 않았다. 모처럼 굽이굽이 돌아드는 첩첩산골의 청량한 복을 누릴 수 있음에도 짐짓 볼멘 소리가 기어나온다. “큰스님, 어찌하여 이 깊은 산골에 계시나이까?”
하지만 그 마음은 불자들과 함께 격의없이 말씀을 나누고 계신 청소 큰스님의 아름다운 미소 속에서 깊은 환희심으로 바뀌었다.

스님, 이 얘기 저 얘기 듣고 싶어서 찾아뵈었습니다.
“아 이 먼데까지 와서 부처님 법에 대해 물어야지 얘기 들으러 왔어요. 얘기야 얘기꾼이 더 잘 하지. 나는 얘기 잘 못해요.”

스님, 불법(佛法)은 무엇입니까?
“불법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교법을 말하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보신 진리의 실상을 말로 듣고 알 수 있겠어요? 불법은 자기가 수행해서 스스로 보는 도리예요.
또 견성(見性)이라 성품을 본다고 하지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우주의 실상을 환히 보셨어요. 아미타 부처님도 팔만대천세계를 걸림없이 밝게 보고 두루 비춰 주십니다. 관세음보살님, 지장보살님도 중생들의 고통을 다 보시고 구제해 주십니다.
거듭 말하지만, 사량분별하던 중생이 스스로 수행해서 일체를 보고 해결하는 것이 불법입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불법 가운데 중생이 있고 중생 가운데 불법이 있어요. 부처님께서 일체 중생 모두가 불법을 볼 수 있는, 다시 말하면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이 있다고 하신 것을 굳게 믿고 수행해야 합니다.
수행의 힘이 안 생기면 보는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공부하는 사람은 힘들지요. 처음부터 볼 수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수행도 생각으로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다 하다 보면 보여요. 비유컨대 불법은 저 하늘의 해란 말입니다. 말머리(話頭)는 손이에요. 유명한 화두 중의 하나인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 알지요? 어떤 학인이 조주 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하고 여쭙자 조주 스님이 ‘무(無)’ 했단 말이에요.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 저 고물고물한 벌레에게도 불성이 있다 했는데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 했는고? 했을 때 말머리(화두)가 손이고, 불법은 해입니다.
염불할 때 ‘나무아미타불‘ 하는 마음도 역시 손과 같아요. ‘아미타불‘ ‘아미타불‘ 일념으로 염송하다 보면 언젠가는 진(眞)과 가(假)가 둘이 아님을 알 수 있어요. 손이 해를 가리킬 때 이게 손이지 해는 아니거든요. 그러나 손을 뚫어지게 보면 해와 손이 둘이 아닌 도리가 나옵니다. 참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무슨 공부를 하든지 아주 일념이 되면 관(觀)이 나오고 보게 됩니다. 그처럼 불법은 보는 도리예요. 일념이 못 되었기 때문에 보지 못하지 일념으로 간절히만 하면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니, ‘환히 보여 주었으니 눈 있는 자 와서 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는 듯합니다. 그런데 본다는 것에 집착되어 우리가 사물을 보듯 어떤 경지가 보이는 건지 궁금합니다.
“경지가 보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보인다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알아야지 말해줄 수 없는 것이고, 말로 물어서 알려고 해도 안 되는 도리입니다.”

그러다 보니 불법을 어렵게 느끼고 대부분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불법을 보는 길을 일러주십시오.
“내가 일념이 되면, 생각 생각이 짙으면 보는 도리가 생깁니다. 얘기를 들어서 알려고 하면 되지 않지만 일념으로 하다 보면 보이는 것입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말머리(화두)를 잡고 자꾸 의심을 하다 하다 보면 보이는 도리가 생기고 또 염불하는 사람은 생각 생각 아미타불을 끊이지 않고 염하면 보입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자나깨나 일념에서 그놈이 주인공이 되어 하면 보는 도리가 나온다는 것뿐입니다. 처음에는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하는 것처럼 말머리가 길지만 하다 하다 보면 생각만 하면 척 들어오고, 더 익으면 일으킬 것 없이 비춰보는 겁니다. 그게 조(照)라, 조사묵조(祖師默照)라, 잠잠히 보고 있으면 일월과 같은 도리가 나와요. 물어서 알려고 하지 말고 내가 노력으로 알려고 해야 해요. 물어서 알라고 하면 거리가 멀어요. 노력이 세면 나오는 거예요.”

보이게 되면, 즉 진리를 깨닫게 되면 마음의 상태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불법은 해와 같다고 했지요. 불법을 본 것, 즉 진리를 깨달은 상태도 마치 해와 같습니다. 해가 일체중생을 비추되 비추었다는 상(相)이 없지요. 내 마음도 해와 같이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남한테 조금 잘하고서 그 사람이 나한테 서운하게 하면 속상해하는데 불법을 보면 뭇 중생을 비추었어도 비추었다는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 그 사람이 잘 하고 잘못 하고에 걸림이 없고 누구한테든지 절대 평등한 마음이 되고 늘 평온하지요. ‘내가 저한테 어떻게 했는데 이렇게 나를 대해’하며 서운해하고 또 상대방이 조금 잘해주면 좋아하고 이렇게 희로애락에 젖어 사는 게 중생살이라면 부처는 일월(日月)과 같이 그저 비추었다는 상도 없고 저절로 일체 중생을 비추어 살리는 것입니다. 참말로 불자라면 누구든지 수행해서 불법을 보고 일월과 같은 마음이 되어 세상을 환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부처가 되고 관세음보살이 되고 지장보살이 되어 세상을 밝히는 일월이 되면 이 세상이 그대로 불국정토입니다.”

수행 단계마다 그 경지가 다를 듯합니다. 뒷사람들을 위해서 그 수행 단계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내가 따로 설명할 게 없어요. 저 법당에서 심우도(尋牛圖) 봤지요. 그게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단계, 수행 단계를 비유한 거라. 본심을 소에 비유한 것인데, 자기의 본심인 소를 찾아 나서서(尋牛) 소 발자국을 봤잖아요(見跡). 그것도 힘이 조금 생긴 거예요. 나중에는 소가 보인단말야.(見牛), 힘이 더 생겨서 쫓아가서 소를 잡고(得牛), 소를 길들여(牧牛) 오는데 다 공부하고 싸우는 비유입니다. 그렇게 조금 조금 힘이 생긴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소를 타잖아요. 소를 타고 우리 집에 돌아와서(騎牛歸家), 도망갈 염려가 없으니 소를 잊어버리고 안심한 경지(忘牛存人)가 오고, 다시 소도 없고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을 깨달아(人牛俱忘),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여실히 보고(返本還源), 중생을 건지기 위해 거리에 나가는(入廛垂手) 그때가 다 성취한 겁니다. 대 성취를 한 거지요.
처음에 발자국 보고 꼬리를 볼 때도 나름대로 힘이 생긴 거예요. 처음 힘이 생겼다고 하는 것은 마음도리가 해 같은데 해를 보긴 봤으되 비오는 날 구름이 끼고 안개 낀 날 해가 반짝 났을 때 해를 본 것과 같아서 그것 가지고는 맑은 하늘을 못 만들잖아요. 모든 안개 구름 걷혀서 백일청천을 만들면 그게 부처님 경지와 같은 겁니다. 스스로 수행을 해서 해와 같이 되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야말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부촉하신 불자의 본분입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도 이 높은 산중에 계신 것처럼, 불법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이끌어주지 않는다고 불만의 소리가 높습니다.
“바르게 살다 가는 것, 옳게 보여주는 것이 포교지 다른 게 없어요. 사실 입전수수의 경지에 가지도 못했으면서 말만 번지르르하면 중생에게 도움 될 게 없어요. 말 없는 가운데 평생을 바르게 살면 혼자 있어도 만인과 함께 사는 것과 똑같습니다. 혼자 있을 때나 시장 가운데 있을 때나 바르게 살면 그 공덕이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바르게 못 살면서 포교한답시고 저잣거리에 나와 휘젓고 다니면 제 차도 못 몰면서 남의 차 고친다고 수선떠는 것과 같아서 오히려 중생에게 빚만 지고 업장만 두텁게 쌓을 뿐입니다. 또 실력이 없는데 누가 곧이 듣겠습니까? 그 꼴이 나는 남의 닭 일년에 한 마리씩 잡아 먹는데 너는 왜 하루에 한 마리씩 잡아먹느냐고 탓하는 것과 꼭 같으니 무슨 이익이 있겠어요?”

그렇지만 부처님처럼 우주의 실상을 본다는 것은 사실 아득한 일이고 안 만큼, 본 만큼은 가르쳐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인즉슨 옳은 말이지요. 그리고 실제로 공부 열심히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4학년생을 가르치기는 박사보다 나을 수 있어요. 그런데 불법 공부는 일반 공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좀전에도 말했지만 그냥 그대로 자기가 잘 살면 그 공덕이 남에게도 가게 되어 있어요.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해서 사람들이 불교는 포교에 소극적이라고 비판들을 하는 모양인데 진리의 세계는 그런 게 아니에요. 본질을 봐야 하고, 현실적으로 불교가 발전이 되든 쇠퇴를 하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 하다 안 될지라도 근본부터 해야 됩니다.
사람들이 못 받아 들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편과 수행방법이 많이 나왔지만 결국은 하나인데 그것도 제대로 못 알아 들으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요. 어쨌든 부처님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너도 성불할 수 있다, 진리를 볼 수 있다는 부처님 말씀을 믿고 수행정진해야 하는데 진리는 볼 생각도 않고 부처님 옷자락만 잡고 잘 되게 해달라고 빌어요. 아들 학교나 들어가고 취직이나 하게 해달라고 빕니다. 어린아이가 태산 같은 금덩어리는 놔두고 껌 하나 달라는 형국이에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참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너무나 자비로우셔서 방편을 써서 중생들 뜻대로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그렇게 차츰차츰 절에 왔다갔다 하면 마음이 차츰차츰 참진리를 찾고 진리를 보고 진리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연 없는 중생은 부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태산을 보여주고 태산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신 부처님께서 중생을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고 염불을 하든 참선을 하든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사들 가운데에는 예불을 도외시하는 분들도 있는데 스님께서는 참선수행을 하시면서 기도와 염불을 병행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수행해서 힘을 얻기 전에는 내 힘으로 하기 벅차니까 먼저 깨달으신 부처님께 조른 겁니다. 불보살님은 우주에 꽉 차 있어요. 지장보살님도 관세음보살님도 여기에도 꽉 차계세요. 그렇다고 형상으로 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으로 비추어서 봐야 합니다. 형상으로 뭐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꾸 형상을 보려 하면 전부 마구니 권속이 됩니다. 그런 생각을 내게 되면 마구니들이 먼저 와서 그들의 노리개감밖에 안 돼요. 무당되고 도깨비 되고 점쟁이밖에 안 되니 주의해야 합니다.
관세음보살 한 번 부르면 관세음보살과 통화가 된 겁니다. 지장보살을 부르면 ‘누구야’ 불렀을 때 통하듯이 통한 것입니다. 또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은 그 위신력이 무변신이기 때문에 한생각이면 통하고 누구든지 기도를 간절하게 되면 불보살님이 가피를 주십니다. 나 역시 수행할 때 장애없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도를 했고, 불보살님의 가피로 순조롭게 수행할 수 있었지요.”

스님께서는 평생 참선수행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불자들에게 염불을 권장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염불과 참선이 둘이 아니에요. 가지는 여러 갈래지만 뿌리는 하나이듯이, 다리는 둘이지만 목은 한목이듯이 한 가지에요. 불법으로 가는 길은 참선 줄 잡은 사람하고 염불 줄 잡은 사람 등이 있는 것처럼 길은 여럿이라도 불법은 하나지 둘이 아니에요. 참선을 해서 득력을 했든 염불을 해서 득력을 했든 다 그 소식이 그 소식이라는 말입니다.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란 소리 들었지요? 십년 공부를 해서 도를 얻고 보니 나무아미타불이란 말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 그냥 도로아미타불이에요.
나는 나름대로 참선해서 조금 힘을 얻었다고 할 수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중생들은 참선으로 어렵단 말입니다. 참선이 좋기는 좋은데 제대로 하는 이가 별로 없어요. 참선은 불법으로 가는 가까운 길이로되 가는 길이 여럿입니다. 희미한 길을 가게 되기도 하고 헛길을 걷기도 하는 등 참선은 최상승법인 만큼 위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염불은 하면 한 만큼은 공덕이 있어요. 설사 제대로 못하고 속으로 했다 해도 공덕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 불자들에게는 염불을 하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그저 많이 많이 해야 합니다. 워낙 생각이 깊은 데 들어가면, 생각이 깊으면 보는 것입니다. 염불은 간절히 사무치게 해서 뇌에 배겨야 합니다. 한 생각 염으로 하면 빠르고 송으로 하며 더딘고로 되도록 염으로 해야 빨리 성취할 수 있습니다.”

염불을 하루에 십만독 이상씩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참선해서 힘을 얻었기 때문에 관(觀)으로 죽 나가니까 십만독을 했지 외우게 되면 삼만 독 하기도 힘들어요. 아미타불 관으로 꿰버리면 십삼만 독도 가능하지요. 불자들에게 적극 권장하다가 내가 말년에 아미타불을 염한 것은 이 세상은 고해바다이기에 극락세계로 회향하기 위해서입니다. 극락세계에 아미타부처님 회상에만 가면 영원한 수명을 얻고 성불할 수 있습니다.”

너무 어리석은 질문인 듯한데 보통 마음 속의 극락을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세상사람들이 승속간에 극락세계를 말하면서도 시인하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유심극락이라 해서 극락이 마음에 있다 하는 것도 맞기는 맞지만 서방정토 극락세계도 분명히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하나도 그른 것이 없습니다. 극락세계를 부인하면 부처님을 부인하는 것과 한가지입니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간절한 염원으로 건설해 놓으신 극락에서는 누구든지 다 성불할 수 있습니다. 지극한 안락을 누리기 위해 극락왕생을 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진실로 성불하기 위해 극락에 왕생해야 합니다.”

스님의 출가 인연 이야기, 수행 이야기를 듣는 것도 저희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출가하시기 전에 이미 공부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6·25 후에 절에 들어왔으니 늦게 들어온 편인데 이 법은 늦게 들어오고 빨리 들어오는 데 있는 게 아니에요. 전생인연인지 열댓살부터 출가하고 싶어서 절에 드나들었는데 절에만 가면 자꾸 아버님이 끄집어내고 끄집어내고 하셨지요. 그래서 계속 출가가 늦어졌지만 집에 있으면서도 늘 마음은 절에 가있었고 항상 참선하고 기도를 했지요.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49재를 지내드리고 꿈을 꾸었는데 참말로 희한한 것을 보았어요. 향비가 내려서 이 우주의 똥이 싹 씻겨져내리는, 똥이 흔적도 없이 씻기는 꿈을 꾸었는데 그렇게 환희로울 수가 없었어요.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 입산해서 오늘날까지 흔들림없이 살고 있습니다.”

스님 수행하시는 가운데 숱한 체험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많아서 얘기할 수도 없고, 공부 속에서 얘기라 하지 않는 얘긴데, 할 필요도 없고...환골탈태라고 해야 할까. 수행을 하다보며 제 몸을 해부도 해봐지고 뇌수술도 해봐지고… 물론 꿈이지요. 몸이 백골로도 되는 것을 느끼고 다 보입니다. 공부를 하다보면 마음은 물론이고 몸 자쳬가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내 몸뚱이의 나지만 나중에는 우주의 나가 됩니다. 초보자는 이 몸뚱이가 나지만 공부를 하다보면 내 마음, 내 몸뚱이 우주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대자연 우주 진리와 하나되고 또 더불어 함께사는 중생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소아(小我)가 대아(大我)가 되고 진아(眞我)가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지요.
왜 수행을 해야 하는가 하면 수행을 통해 소아를 버리고 대아, 진아가 되었을 때 세상일에 임해서도 수행자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만일 사장이라면 자기 욕심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공심으로 사원들을 위해, 나라를 위해 회사를 운영하게 되고, 사원 또한 제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장과 사원, 자연과 사람 등이 세상 만물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위해 일하게 됩니다.”

수행자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그야말로 그대로 이 땅에 불국정토가 꽃필 듯합니다. 참으로 행복해지는 그 도리를 모르고 분망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한말씀 더 부탁드립니다.
“바르게 옳게 살아야지요. 도(道)란 다른 게 없어요. 바르게 사는 데에서 도가 나옵니다.
사람은 무엇보다 부모를 의지해서 나왔으니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근본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새끼만 이뻐서 죽어요. 부모 위해 쓰는 돈은 아까워하고 자식 위해 쓰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아요. 부모에게 빚은 잔뜩 져놓고 돈놀이 같은 자식사랑만 하고 있으니 어디 이치에 맞습니까?
또 내 목숨이 아깝거든 남의 목숨도 아껴주고, 계(불살생, 불투도, 불망어, 불사음, 불음주) 잘 지키고 양심껏 바르게 사는 게 부처지 다른 게 아닙니다.
특히 스님네들은 계율에 철저해야 합니다. 내가 실력이 있어서 계에 걸림이 없다 해도 중생을 위해서 계를 지켜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기는 고기 먹으면서 애한테 고기 먹지 말라고 하면 어디 말을 듣습니까? 계는 터전이기 때문에 터전 없이는 집을 못 짓습니다. 막행막식은 터 안 닦고 집 짓는 것과 같습니다. 실로 계율을 안 지키면 중생을 포기하고 중노릇 포기하고 부처님 배반하는 사람입니다.
계를 잘 지키면 설사 본지소식이 없다 해도 부처님 권속이고, 설사 본지소식이 조금 들어왔다 해도 계를 안 지키면 마구니 무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 기도 염불 참선 등 자기에게 맞는 것을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세상살이가 답답해서 도저히 안 될 때 일심으로 부처님께 매달려 기도하면 불가사의한 도리가 나오니 사람의 힘으로 안 될 때 지성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앞에서 누누이 말씀드렸듯이 스스로 수행해야 합니다. 염념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만 이 세상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명심하고 오늘부터라도 염불하고 참선하세요. 승속을 막론하고 수행해서 이 자연과 내가 우리 모두가 둘이 아니고 한몸임을 깨달아 부처로 보살로 살아가는 그날, 이 땅에 정토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 불제자의 본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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